‘모두가 외면해 온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직시하는 직업.’ 오영학(72) 한국유품정리관리협회 회장은 ‘유품정리사’에 대해 이렇게 단언했다. 고인(故人)의 흔적을 정리하고 유품을 수습하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한국 사회는 유품정리사에 대해 인식이 낮은 게 사실이다. 특수청소 용역으로 여기면서 정식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 회장은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전문인력 양성 제한으로 이어지고, 비전문적이고 무성의한 서비스는 유족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준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설립된 ‘한국유품정리관리협회’는 유품정리사의 민간자격등록과 한국표준직업분류 등재를 추진하면서 유품과 유품정리사에 대해 인식을 바꾸는 데 전념을 기울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독거노인 가구는 140만여 가구로 전체 가구(1천997만9천 가구)의 7.1%를 차지했다. 백 집 중 일곱 집이 노인 홀로 지낸다는 의미다. 이미 곳곳에서 부모나 친인척의 고독사를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뒤에나 인지하고 유품을 정리하곤 한다. 대개는 오물도 함께 처리하면서 곤혹을 치른다. 이때 고인의 흔적을 정리하고 유품을 수습하는 ‘유품정리사’가 필요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 유품정리사는 생소한 직업이다. 다음은 오 회장과의 일문일답.

-유품정리란 무엇인가.
“유품정리란 고인이 돌아가신 자리를 정리하는 특수 청소부터 시작해 유품 수습, 정리, 보관 및 처분하는 일 전반을 담당하는 특화업종이다. 공공요금 및 차량 말소, 사망신고와 같은 행정절차와 재산정리 및 상속업무 등 전문 법조인 연계지원도 이에 포함된다. 한마디로 장례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전문 지식이 수반돼야 하기에 도덕성, 사명감, 전문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전문직종이다. 또 전문 유품정리사는 어르신 생전부터 예비 유품정리와 사후 정리 방안, 장기기증 여부 등을 미리 엔딩노트로 남겨 당사자의 웰다잉(Well-dying)과 유족의 준비를 도울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많은 유족들이 갑작스레 떠난 고인의 자리를 목격하고 2차 트라우마를 겪기도 하며, 남겨진 고인의 통장 잔고나 유품들이 또 다른 고통과 불화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한국유품정리관리협회의 설립 의미와 역할은.
“한국유품정리관리협회는 유품정리사의 제도화, 법제화를 이루고자 지난해 11월 설립됐다. 한국 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령화가 가속화됐고 그에 따라 고독사 사례가 늘고 있지만 정작 유품정리업이라는 직종의 위상과 개념은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 유품정리사는 민간자격으로 등록돼 있지 않다. 한국표준직업분류에도 등재돼 있지 않다. 이는 전문인력 양성과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현장 및 유품정리에 비전문적 개인사업자 내지 청소업체 참여를 유도, 각종 문제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독사 현장에 있는 악취, 파리 등 날벌레는 밀폐 공간에서 살균, 탈취, 박멸해야 한다. 환기 목적으로 창문이나 현관을 열면 시신에 있던 바이러스와 날벌레들이 이웃집 음식물에 앉게 되고 병을 옮기기 때문이다. 유품정리 과정에서 금품이 나왔을 때 견물생심을 억누를 수 있는 사명감과 직업윤리 함양도 필수다. 이를 위해 우리 협회는 장례업계, 학계, 의료계, 사회적기업 등과의 협업을 거쳐 6개 과목으로 구성된 유품정리사 양성교육과정을 정립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지난 2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민간자격등록을 신청하고 경기도에서 ‘유품정리업 공론화 심포지엄’도 열었다.”


-공직 생활을 했는데, 유품정리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일산구청장을 지낸 인연으로 2011년 고양시에 설립된 유품정리 전문업체 ‘크린키퍼스’를 알게 됐다. 국내 1호 유품정리사 이창호씨가 설립한 업체로 현재 고독사, 자살, 무연고 사망 등이 발생한 현장 정리를 돕는 사회적기업 ㈜함께나눔의 전신이다. 지금은 나 또한 ㈜함께나눔의 사외이사로 있지만, 당시에는 행정 경험을 살려 크린키퍼스의 사회적기업 인증을 돕고자 나서게 됐다.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기에 유품정리업에 대해 실제적인 이해가 필요했다. 공직자의 자세는 정확한 현장 사정을 통해 행정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정리가 비교적 용이한 일반 가정집부터 구더기와 추기(시신이 부패해 흐르는 물), 악취가 존재하는 고독사 현장까지 모든 실상을 파악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2002년부터 유품정리업이 활성화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직업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에 문제의식이 생겼다.”


-유품정리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연은.
“가장 인상 깊은 사연은 공직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17년 지기의 사례다. 그는 유품정리사는 아니지만, 교육자이자 서예가인 부친의 삶과 병상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탈상 날 제단에 바쳤다. 이는 자손의 손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가보이자 걸작품으로 훗날 가정화합과 효행의 전수 차원에서 크게 유익한 유산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채권추심 충격으로 투신 자살한 어머니가 있었는데, 아들이 채권자 등쌀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유품정리사에게 수습을 요청했다. 또 다른 사연은 고인의 품에서 유품정리사가 발견한 돈 봉투와 관련된 얘기다. 낡은 지폐 300만 원이 들어있었는데, 고인인 어머니가 자식으로부터 받았던 용돈을 고스란히 모아 놓은 것이었다. 고인의 봉투는 유품정리사에 의해 그대로 유족의 품에 전달됐다.”

-난관은 무엇인가. 앞으로의 계획은.
“유품정리사 민간자격증 등록 업무 소관과 관려해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간 의견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협회는 유품정리사 인증과 관리를 보건복지부가 소관해주길 바라지만 보건복지부는 시신이 아닌 유품 수습은 어렵다고 한다. 법무부는 이미 변호사와 법무사가 유산 상속과 처분을 담당하는 만큼, 별도의 유품 정리는 소관할 바가 아니라는 견해다. 고인의 생전 웰다잉을 준비하고, 고인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것. 또 물건을 비롯한 고인의 모든 유산의 정리, 처분을 지원하는 것은 모든 부처와 연결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부처 간 공 떠넘기기로 인해 이미 20여 개의 전문업체가 정식으로 허가받지 못한 상태다. 전문업체는 대우와 지원도 받지 못하고 묵묵히 유품정리를 수행하는 반면, 일부 비전문 업체들은 유품과 장례문화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실정이다. 일본은 사단법인이 정착돼 유품정리사 민간 자격증을 관리하고 인증 등록은 내각부, 인증관리 및 대외안내는 후생노동성이 체계적으로 관할한다. 직업능력개발원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등에 조속한 의견 조율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한말씀.
“유품은 처리의 대상이 아니라 정리하고 보존해야 하는 고인의 혼(魂)이자 삶의 기록이다. 이미 한참 전에 우리나라도 유품정리에 대해 제도화를 논의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경기도에서 먼저 ‘웰다잉 조례’를 통해 엔딩노트 제작과 관리를 제도화하는 도민 인식 개선에 힘써야 한다. 제도가 뒷받침이 돼야 유품정리업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다. 유품정리업은 국가와 지자체의 웰다잉 문화와 연계해 특화업종으로 성장한다면 증가하는 수요 충족은 물론, 청년과 시니어층의 고용 확대에도 기여할 것이다. 유품정리업을 비롯한 장례문화 개선에 대해 언론에서도 많은 공론화의 장을 열어주길 바란다. 유품정리업의 민간자격 등록과 직업화는 고용인프라 확충과 최고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초석이 될 것이다.”

황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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