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platform). 철도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곳을 지칭하던 이 단어는 현대사회에 접어들어 다양한 정의의 물질적 공간 개념을 뛰어넘은 장(場)의 의미로 사용된다.

연기자이자 미술 컬렉터, 사진작가로도 활동 중인 배우 이광기가 파주출판단지에 차린 ‘스튜디오 끼’는 예술인과 대중의 플랫폼을 지향한다.

9일 그의 스튜디오에서 나눈 커피 한 잔.

이 한 잔의 커피와 곁들인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 플랫폼은 ‘끼’라는 공간에 국한된 곳이 아닌 ‘이광기’ 본인 자체였다.

가족의 아픔을 나눔으로 극복하고자 찾은 아이티에서 사진작가로서의 새로운 길을 찾은 배우, 아니 사진작가 이광기.

파주출판도시의 약동을 꿈꾸는 그의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이미 성공한 배우이자, 예능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었다. 그 와중 사진에 빠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무래도 큰 계기는 가족사에 큰 아픔이 있고 난 이후부터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아들 석규가 떠난 뒤 지진 피해를 입었던 아이티를 다녀오고나서 세상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배우로서 내가 할 수 있는건 말뿐인 위로가 전부였다. 실질적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치료해주는 의사선생, 음악가들은 연주를 해줘서 그들을 기쁘게 해줬다. 또 사진가들은 기록을 남겨서 그들의 사연을 세상에 알려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아내더라. 그래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만 나는 큰 재난을 겪은 뒤 남겨진 아픈 실상도 중요하지만, 그 와중에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보였다. 아이티 아이들의 웃음 뒤에는 꿈이 있었다. 그 꿈꾸는 아이들을 위해 사진을 찍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해외를 나갈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가서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이티에 학교를 지었다고 들었다.
“예전부터 컬렉션에 관심이 많았다. 남들 재테크할 때 난 미술쪽 신진작가들 젊은작가들의 그림을 관람하고 하나둘씩 수집해왔었다. 아이티를 다녀온 뒤,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진도 7.0 강진이 휩쓴 아이티에는 무너진 학교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작가들과 식사자리에서 자선경매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래서 서울옥션과 경매를 시작해서 2010년 5월 어린이달에 아이티를 위한 자선경매를 월드비전과 함께 처음으로 시작했다. 그때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김혜자 선배와 정애리 선배를 비롯해 후배 유지태, 하정우, 구혜선씨 등 동료 배우들이 많이 동참해줬다. 이 자선경매를 기점으로 많은 작가들을 알아가게 됐다. 1년에 한 번 경매 준비를 하기 위해서 어떻게하면 더 훌륭한 작가들과 함께 할까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결국 컬렉션은 누군가가 사줘야 한다. 시장에서 유통이 될수있는 작가들, 앞으로 가능성있는 작가들이 나서야 한다. 그래서 신진작가 중견작가 원로작가들을 적절하게 매칭해서 전시를 했다. 그 수익금이 꽤 나와 2012년도에 아이티에 학교가 하나 세워졌다.”

―지난해 ‘스튜디오 끼’의 문을 열었다. 어떻게 파주출판단지와 연이 닿게 됐나.
“지난해까지 경기도 DMZ국제다큐영화제 활동을 쭉 해왔었다. 그때만해도 고양시에 살고 있었는데, 마침 파주 문산읍 쪽에서 식당도 했어서 파주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영화제 활동과 식당 운영을 하며 시간날 때마다 연천 전곡 등 경기북부를 돌아다녔었는데 큰 매력을 느꼈다. 특히 파주의 경우 헤이리와 출판도시를 보며 이곳이 앞으로 남북문화교류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곳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항상 기도하면서 꿈…f던게 자선행사와 모임을 할 수 있는 나만의 플랫폼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출판단지 옆 심학산 자락에 자리잡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공간이 잘 찾아지지 않더라.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출판도시에 원하는 규모의 땅이 있길래 그걸 매입하고 건물을 지었다. 스튜디오 끼는 한 공간은 대관해주고, 다른 공간은 갤러리 전시공간과 강연공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현재도 파주출판도시에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홍대에서 망원동, 망원동에서 마포, 고양 행신동을 거쳐 이 출판도시까지 밀려들어오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다. 그렇게 밀려나온 예술가들이 보기에 이 출판도시는 나와 마찬가지로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파주출판도시에서 어떤 예술적 가치를 느꼈나.
“얼마 전 영국의 한 미술관장이 이곳을 들렀다. 처음엔 제 스튜디오를 보고 흥미로워 하길래 출판도시 투어를 함께했더니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공간을 보고 너무 놀라더라. 그 관장이 말하길 이렇게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가까운 거리 한 공간에 밀집된 곳은 전세계 유일한 것 같다면서 영국 미술매거진에 기고하겠다고 했다. 파주출판도시는 공항과도 근접해 있기에 얼마 전 뉴욕 큰 스튜디오가 한국 시장에 진출할 장소를 모색하며 출판도시도 둘러봤다. 그런 대형 스튜디오가 유치된다면 한국에도 어마어마한 미술콘텐츠가 생기는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 출판도시는 영화와 미술 등 다양한 작가들이 함께 있기에 큰 부가가치 유발하는 관광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협업까지 이뤄진다면 예술의 벽이 좀더 낮춰진 그런 도시가 완성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파주출판도시의 현실적 문제들도 내포돼 있다고 들었다.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더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는게 일단 저희가 작년에 많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아트벙커라는 문화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군사시설이 산재한 파주라는 이미지와 딱 맞지 않나. 파주아트벙커에는 이곳에 상주하는 작가들 2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 작가들이 들어오면서 활성화되고 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까지 아트벙커 작가들 멤버가 정말 좋으니 관심을 가지고 뛰어들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저는 사실 앞으로 이곳에 필요한 것은 파주시의 역할이라고 본다. 파주시 인구가 40만 명이 넘는데 아직까지 문화재단이 없다. 그래서 문화재단이 생겨서 그 문화재단을 통해 목소리를 하나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중요한건 지금 영상 자료원 옆에 파주시 5천 평 부지와 LH 소유 3천 평가량 부지가 있다. 그 부지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대부분 지자체의 문화재단이 너무 하드웨어만 치중하다보니 콘텐츠에 활용할 예산이 부족하다. 소프트웨어가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하드웨어는 러프하게 만들고 민간 예술가들과 같이 합작해서 젊은 작가들이 이곳에 들어올수 있도록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부산 고려제강이 좋은 선진사례다. 고려제강은 한 100억 원 이상 투자해서 폐공장을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그걸 혼자 운영 못하니 부산시에서 연간 예산지원을 해서 연중 100일가량을 시에서 활용하고 있다. 고려제강 입장에서는 운영경비가 세이브하는 셈이다. 그래서 파주시 땅을 경기도와 논의해서 민자분양하고 그 공간에 작게 공장형태로 예술가들에게 분양했으면 한다. 가능성 있는 작가들은 저금리로 장기 분양하게 되면 제가 보기엔 웹툰작가나 미디어, 시나리오 작가 같은 사람들의 수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되면 파주출판도시가 도심속의 문화예술 힐링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그 공간 안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 주민들이 작가들과 저녁에 맥주도 마시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문화를 소비하는 그런 문화가 형성될 것을 본다. 파주의 롯데아울렛이 있다면 그 맞은편에 미술품 아울렛이 생기는 것이다.”

―방송활동에 대한 갈망은 없나.
“방송활동도 계속 하려고 한다. 많이는 아니여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무래도 뉴미디어시대다 보니 유튜브라든지 다양한 채널들이 많지 않나. 그리고 끼에서 광고도 많이 찍는데 얼마 전 광고촬영한 삼성전자도 티비보다는 뉴미디어로 가는 추세다. 이제는 나도 준비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끼에서의 모든 활동도 결국 연기와 일통한다고 본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고민이 앞으로 오십이 넘어서 내가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가였다. 과연 연기자로 내가 평생을 살 수 있을까. 물론 한 우물을 파서 잘 가는 분들도 있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저는 예술은 모두 하나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연기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이 범주 안에서 내가 행위를 하고 놀고 있으면 결국 다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예술가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연기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황영민기자/hym@joongboo.com

사진=김영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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