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었다. 선선하고 뽀송해진 바람을 느끼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으스스 떨려왔다. “카페라테 한 잔 주세요. 따뜻한 걸로요.” 후후 불어 한 김을 날린 후 한 모금을 마셨다.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에어컨은 늦여름 더위까지 털어내려고 작정한 듯 탈탈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문득 한 달 전 일이 떠올랐다. 친구와 나는 턱밑까지 차오른 더위를 느끼며 카페 주문대 앞에 서있었다.

“우리 나이에 여름이라고 찬 거 먹으면 배탈 나.” 친구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그때, 어떤 여자가 카페 문을 밀고 들어와서 손바닥을 쭈뼛 내밀었다. 곧 시궁창에서나 날 법한 역한 냄새가 풍겨왔다. 매장 직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그녀의 허연 손바닥 위로 동전 대신에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그날 그녀의 손바닥에 떨어지던 미끄덩한 땀을 떠올리며 다시 커피 한 모금을 삼켰다. 카페 안은 에어컨의 냉기로 가득했다. 나처럼 시원한 곳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탓일 것이다. 하지만 초가을이라고는 하나 한여름만큼의 에어컨을 틀어놓은 것은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를 돌리는 데 필요한 발전원가의 70% 이상이 수입되고 있다. 하지만, 전기요금은 국제 유가 상승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는 땅덩어리가 좁고 자연조건이 불리한 우리에게는 아직은 비싼 에너지원이다. 이래저래 우리나라에서 전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원가는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기요금은 국제 유가 등 원료비 상승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원가에 상응해서 전기요금이 책정된다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풍력, 태양광 같은 자연친화적인 에너지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불우이웃들에게 전기를 나눠주며 전기가 좀더 가치롭게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시원해, 심신의 피로가 풀린다. 여기가 천국이야!” 어느새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커피 한 모금을 호로록 삼키며 말했다. 커피 한 잔의 가치와 전기 한 줌의 가치가 새삼 느껴졌다. 출입구 문 쪽을 바라봤다. ‘그녀가 성큼성큼 다가와서 다시 하얀 손바닥을 내민다면, 카페 직원에게 우리는 괜찮으니 에어컨을 잠깐 끄는 게 어떠냐고 말할 텐데. 한여름 시원한 냉기 한 줌을 그녀에게 나눠주는 것은 어떠냐고 물어볼 텐데.’

쇼윈도 바깥으로는 몇몇 사람들이 가을바람 같은 보드라운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한은진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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