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자 생명의 집 운영위원은 입양 전문가도 법조인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생명의 집 운영위원으로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위해 입양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벌써 그가 입양시킨 아이만 20여 명에 달한다. 이 위원은 입양 과정에서 필요한 법률적인 문제부터 친부모 상담까지 아이들이 좋은 가정에 입양돼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용인에 위치한 생명의 집은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힘든 상황에 처한 미혼모와 임산부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출산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생명의 집을 한마디로 한부모 가족복지시설이라고 정의했다. 이 위원은 지난해 3월부터 생명의 집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1일 인터뷰를 위해 그가 근무하는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의 출판사를 방문했을 때 눈에 띈 것은 자신이 입양에 도움을 준 아이들의 성장 사진이었다. 사진 속 아이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수원에 위치한 출판사 직원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그가 어떻게 이 일에 뛰어들게 됐는지 궁금했다. 이옥자 생명의 집 운영위원을 만나 입양에 대한 그의 깊은 생각을 들어봤다.

―입양을 도와주는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렸을 때부터 성당을 다닌 가톨릭 신자다. 우연히 세례명이 같은 수녀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생명의 집이라는 곳이 있다며 소개를 해줬다. 그래서 한번 생명의 집을 찾아가 봤는데 아기들을 안고 엄마들이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때까지도 입양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당시 스티브 목사라는 외국인이 생명의 집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마침 생명의 집에 있던 한 산모가 아이를 낳고 도망을 가는 일이 벌어졌다. 스티브 목사가 엄마를 찾을 때까지 자신이 아이를 봐주겠다고 했다. 친 아이도 아닌데 스티브 목사가 저렇게까지 아이를 키우겠다고 하는 것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목사가 매일 아이의 상태를 보기 위해 정성을 들이는 것을 보고 목사의 간절함을 느꼈다. 여자들이 결혼 안 한 상태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입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아이와 목사를 도와주기로 했다. 주변에 내가 알고 있는 변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생명의 집 원장 수녀를 후견인으로 신청해 입양 절차를 진행했다. 나중에 오산에서 친모와 연락이 돼 만났다. 친모는 아이를 보고도 관심이 없었다. 친모에게 나중에 언제든 필요할 때 연락하라고 말했다. 친모에게 입양 동의를 받은 후 입양 절차를 끝냈다. 이게 내가 최초로 도와준 입양이다.”

―그동안 입양을 도와주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심장 이상이 있고 귀와 입술에 문제가 있는 아이가 있었다.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픈 상황속에서도 아이가 웃음을 짓는 모습이 보였다. 제이콥이라는 선교사가 입양을 하겠다고 해 입양 절차를 진행했는데 법원에서 판사가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데 정말 키울 수 있냐고 의심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행히 입양에 성공해 머리숱도 많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또 한번은 중국인 유학생이 아이를 낳았는데 처음에는 친아버지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산모에게 물어 SNS 계정을 통해 친부를 찾았다. 강원도에 거주하는 한국 대학생이었다. 남자의 가족과 연락해 확실히 DNA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검사 결과 아기와 DNA가 99.9% 일치했다. 이후 입양 절차를 진행할 때 국적 유지 여부, 자기 조국에 대한 역사 교육 여부, 생활비 문제 등 입양할 이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또 이 아이로 인해서 친부모들끼리 서로 원수처럼 지내지 말 것을 당부했다. 만남과 헤어짐은 어디에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아이를 위해서는 좋은 엄마 아빠로 남아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상처받을 필요도 없고 아이가 잘 되기를 기도해달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업그레이드돼야 하고 내가 이상한 모습으로 비치지 않게 노력하자고 친부모들에게 이야기했다. 이처럼 입양 이후에도 나는 친모와 계속 연락을 한다. 이 밖에도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아이를 낳게 된 여성이 있어 입양을 할 것인지 본인이 키우도록 할지에 대해 상담과 법률적 도움을 준 적도 있다.”

―입양을 도와주시면서 느끼 점은.
“요보호아동 여부를 법원의 판사들이 결정하고 있는 부분이 문제다. 입양특례법상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요보호아동이라고 규정하는데 사실 이것을 판사들의 잣대에 따라 판단해버리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굉장한 고민을 해야만 한다. 전쟁고아 같은 아이들은 요보호아동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이외의 경우에 있는 아이들을 요보호아동으로 규정해 버리면 그것은 친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무슨 기준으로 요보호아동을 법원에서 선택하냐는 것이다. 또 베이비박스 운동을 국가적으로 해야 한다. 병원마다 산부인과에서 베이비박스가 설치될 필요가 있다.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는 것 뿐만 아니라 여성들과 의논 하고 상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저 같은 사람이 병원 산부인과에서 상담을 해줘야 한다. 아이와 부모는 친구 관계다.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우리 민족이 잘못 설정하고 있다. 한 인간은 한 인간이다. 아이들의 존엄성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아이는 아이고 부모는 부모인 것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과 자신을 동일시해 버린다.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기업 관계자가 아이를 입양했는데 이후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자 아이 때문이라는 판단에 13살 된 아이를 파양시켰다는 것이다. 아이들에 대해 이상하게 집착을 하는 셈이다. 이런 인식 때문에 입양을 죄악으로 생각하고 꺼리게 된다. 입양에 대한 사회적인 문화가 바껴야 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반려견들을 굉장히 많이 기르는데 50년 전에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일상화됐었던 것처럼 이제는 입양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보다 입양 문화가 50년이 뒤지고 있다고 본다. 아이와 부모는 종속관계가 아니다. 아이는 태어날 때 어떤 존재로서 태어나는 것이지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이 밖에도 나는 법학이 인문학을 바닥에 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법학과를 없애고 로스쿨 제도를 운영 중인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판사들이 자신의 분야밖에 모르고 판결을 내리는 것이 문제다. 판사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그것을 흡수해 판결을 내려야 한다. 판사의 판결은 흑과 백을 가르는 이항 대립적인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대학원에서 형사소송법으로 석·박사 학위를 땄다. 입양특례법의 의미와 요보호아동 기준과 관련된 논문을 쓸 것이다. 요보호아동의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친권을 침해하고 있는 문제를 다룰 것이다. 또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지금까지 책을 18권 냈지만 2007년부터 소설은 쓰지않고 있고 논문만 집필할 예정이다. 가끔 나에게 ‘꾀를 피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게으르면 이 일을 할 수 없다. 입양 일을 도와주면 하루가 다 간다. 내가 이 일을 통해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다. 입양 절차를 진행하다 보면 신경 써야 할 상황이 많이 생겨 힘들지만 그래도 생명의 집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나의 본업은 작가인데 생명의 집에 입양에 관해 도움을 주고 있는 부분도 내 돈을 들여가면서 한다. 입양 절차를 무료로 진행해 주고 일 처리도 잘해준다는 입소문이 나서인지 생명의 집을 찾는 이들이 많다. 나는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다. 나를 통해 입양을 받은 사람들은 가끔 고맙다며 선물을 주려고 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감사의 표시를 하려면 담당 변호사에게 하라고 한다. 나는 입양을 권하는 게 아니다. 당연히 친모가 아이를 키우는 게 가장 좋다. 입양은 선택이다. 친모가 입양을 선택하면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앞으로 생명의 집 운영위원으로서 충실히 역할을 이행하고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임산부들에게 변호사를 통한 법적인 조력과 엄마로서의 존재감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겠다. 내가 법조인은 아니지만 법적인 도움을 요청해오는 이들도 많다. 나에게 도움을 원한다면 그 누구든 도와주겠다. 남을 도와주면서 나도 성숙해진다.”

김형욱기자/factcheck@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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