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살아있다- 고구려 유적 답사기행<1>

      

일찍이 2천여 년 전, 광활한 요동(遼東·요하강 동쪽, 현재 중국 요령성에 속함)벌에 나라를 세우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강대한 맹주를 꿈꾸며 700여 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니었던 고구려. 기원전 37년 주몽이 이끄는 부여족의 한 갈래가 비류수(동가강이라고도 함, 현재 압록강 지류인 혼강) 유역에 자리 잡은 고구려는 초기부터 중국의 중원세력, 북방 여러 민족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점차 강대해졌다.
5세기,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침공하여 남쪽 영토를 임진강과 한강까지 확장시켰고, 서북쪽으로는 후연(後燕)을 쳐서 요동을 완전히 차지하고 요서(遼西·요하강 서쪽) 지역의 일부까지 진출하였다.
6세기 중반에 들어서 내외로 우환에 시달리던 고구려는 국력이 점차 쇠약해 갔다. 특히 연개소문 사후 지배층이 분열되어 정치상황이 어지러워졌고 민심이 혼란해져 있었다. 668년, 나당(羅唐)연합군은 혼란에 빠진 고구려를 공격하여 수도인 평양을 차지하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고구려는 성의 나라라고 할 만큼 성이 많았고, 고구려라는 이름도 성을 뜻하는 “구루”에서 나왔다고 한다. 고구려 사람들은 험악한 산세와 자연여건을 이용하여 많은 난공역수(難攻易守)의 산성을 쌓았다. 현재 중국의 요령성(遼寧省)과 길림성(吉林省) 두 지역은 고구려의 주요한 활동무대였고 요동반도(遼東半島)는 고구려가 수, 당 등 중원 세력의 침공을 막아내는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요동에는 주몽이 세운 고구려의 첫 도읍지인 홍승골성(환인현 오녀산성)은 물론, 오골성(봉성시 봉황산성), 신성(무순시 고이산성), 백암성(요양시 연주성), 요동성(요양시), 안시성(안산시 해성 영성자산성), 건안성(영구시 개주 고려성산성), 비사성(대련시 금주구 대흑산산성), 석성(대련시 장하 성산산성)을 비롯한 많은 산성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수·당군에겐 저승길과도 같았던 요택(遼澤·요하강 입해구 늪지지역)도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천여 년 전의 왕국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당당한 위용을 만방에 떨친 고구려는 역사 속에 사라져 버리고, 그 시기 남긴 웅장하고 견고했던 성곽들도 역대의 전쟁과 오랜 세월의 비바람 속에 거의 무너져 내렸으며, 드문드문 남아있는 허물어져가는 성벽마저 황량한 산중의 나무숲, 가시덤불과 잡초에 묻혀 있다. 하지만 그 흔적은 역력하게 남아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 주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중국정부는 중국 경내의 고구려 유적지들에 대한 복원·정비 작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오녀산성 등 일부 고구려 유적들은 이미 복원되어 관광지로 개방되었고, 또 일부 산성은 지금도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중국에서 다년간 기자생활을 해온 필자는 취재 길에 기회가 닿으면 한두 곳의 고구려 유적지를 비롯해 현지의 역사 유적지를 찾아 답사하면서 살아있는 역사의 숨결을 느껴 보곤 한다.
이제부터 필자가 요동벌을 다니며 답사했던 일부 고구려 유적지를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요동 고구려유적 답사기행문을 통해 소개하려 한다. 필자가 역사학자도 아니고 고구려 전문가도 아니란 것과 본 답사기행문에서 인용한 역사 사실 관련 부분은 해당되는 지방지(地方誌)를 비롯한 현지의 문헌 기록에 의존, 참조하였음을 미리 밝혀둔다. 본 답사기행문이 독자들의 일람(一覽)을 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고구려는 살아있다 : 역사의 숨결 어린 요동―고구려 유적 답사기행(1)

오녀산성(Ⅰ)
중국 요령성에서 환인 오녀산성 하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왜냐면 그곳이 요령지역에서 손꼽히는 산림풍경 관광지였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 오녀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그 이름은 더 널리 퍼졌다.
         

▶오녀산성, 바로 고구려의 홍승골성
오녀산성은 요령성 환인 만족자치현 현성 동북쪽으로 8.5km 떨어진 오녀산에 자리 잡고 있다. 고구려 시조 주몽이 개척한 고구려의 발상지이며, 고구려의 첫 번째 도읍이다. 이 산성은 기원전 37년부터 기원 3년 주몽의 아들 유리왕이 도읍을 국내성(길림성 집안시에 있음)으로 이전할 때까지 40년 동안 고구려의 수도로 유지되었다. 요령성과 길림성에 아직 남아 있는 100여 개의 고구려산성 가운데 이 산성은 보존상태가 가장 좋고 규모가 크며 성읍의 체계를 두루 갖춘, 세계에서도 특이한 축성술을 자랑할 만한 산성으로서 20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60년, 요령성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오녀산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작한 뒤부터 지금까지 발굴과 연구·보호사업이 끊이지 않았다. 1961년에 오녀산성은 환인현과 본계시(本溪市·환인현은 본계시에서 관할)의 문화재로 지정됐고, 2년 후에는 요령성 성급 문화재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20세기의 80년대 초반까지도 고고학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유물 파악의 부족으로 오녀산성이 고구려의 어느 산성이라는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오녀산성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은 1986년부터 시작되었다. 1985년 6월, 환인현에서는 국무원 산하 문화부 관련 부서의 허가를 받고 오녀산 위에 텔레비전 송신탑을 세웠는데 이 탑 주변의 역사유물을 정리하고 발굴하기 위해 환인현과 본계시, 요령성 문화재 관계부서가 공동으로 고고발굴단을 구성, 이듬해 5월부터 3개월 동안 오녀산성에 대한 발굴을 진행했다. 1천여㎡에 달하는 면적을 발굴한 결과, 한나라와 금나라 시기의 유물과 함께 고구려 시기의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됐다고 발표하였다. ‘오녀산성이 바로 고구려의 홍승골성(紇升骨城)이다.’ 고증(考證)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이 홍승골성이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라고 확인하였다.
오녀산성 발굴의 진척에 따라 오녀산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리도 점차 강화됐다. 1994년, 요령성 정부에서는 오녀산 풍경구를 성급 풍경구로 지정하고, 그 이듬해부터 환인현 정부에서는 순차적으로 오녀산풍경명승구관리처와 오녀산산성관리처 등 전문 부서를 설치하고 오녀산성의 복원사업을 비롯한 전체 풍경구의 개발과 관리를 전면적으로 추진하여 왔다. 이리하여 오녀산성은 1996년 11월에 국가급 중점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2년에는 국가 AAAA급 관광지역으로 지정됐으며, 2004년 7월에는 길림성 집안(集安) 고구려왕릉 및 귀족묘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동방에 유일한 아크로폴리스
필자는 오녀산성을 몇 번 다녀왔다. 전번에 갈 때는 여름인지라 오녀산은 온통 검푸른 세계를 이루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초겨울이라 울긋불긋 오녀산을 단장했던 단풍잎들이 적갈색 낙엽으로 되어 찬바람에 뒹굴며 흩날리고 있었다.
환인현성 서북쪽에 자리한 유가구촌(劉家溝村)을 지나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노라면 구름 속을 뚫고 우뚝 솟은 커다란 산봉우리가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산이 바로 오녀산이다. 오녀산은 서남쪽에서 멀리 바라보면 뉘엿한 산등성이 위에 높다란 돌병풍을 둘러친 어마어마한 선체가 물결 위에 가로 떠있는 모양이고, 동쪽에서 위로 바라보면 기암괴석들이 우뚝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늘어서 있는 절벽이며, 남쪽에서 바라보면 쳐다보기만 하여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한 절벽이다.
산세가 이렇게 준험한 오녀산 위에 자리 잡은 오녀산성은 길이가 1천540m, 너비가 350~550m인 불규칙적인 장방형으로 되어 있으며 둘레의 길이만 4천754m이다.
산성은 산위 부분과 산허리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산위 부분은 오녀산의 주봉인데 산성의 서부와 서남부에 위치, 평균 높이가 해발 800m이며 최고봉의 높이는 해발 823.8m이다. 산성 서남부는 남북 길이가 600m, 동서 너비가 110~200m이고 지세가 비교적 평탄하고 널찍하며 주변이 모두 70~90m 높이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야말로 천혜의 자연 성벽을 이루고 있다. 산 위에는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 숲을 이루고 있다. 산성의 왕궁, 병영, 초소, 저수지, 장대, 서문과 방어절벽 등 유적지가 대부분 이 숲속에 분포되어 있다.
산허리 부분은 산성 동쪽에 평평하고 완만한 비탈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로 남벽과 남문, 동벽과 동문, 초소 등 유적지가 있다. 이로 보아 오녀산성은 동쪽 성벽이 인공적인 방어성벽인 외에 서, 남, 북 3면은 절벽으로 자연방어벽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의 고증에 의하면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첫 도읍지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적인 동방의 유일한 수비 성(衛城)으로서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견줄 수 있다고 한다. 고대 도시국가의 중심지에 있는 언덕을 의미하는 아크로폴리스는 지금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시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수비 성으로서 동서 270m, 남북 150m, 서쪽의 입구를 제외하고 다른 3방향은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 인공을 가미해 성벽을 쌓고 방어의 거점으로 삼은, 신전(神殿)과 현문(玄門) 등이 두루 갖추어져 있는 세계에 이름난 옛 성이다. 오녀산성도 수비하기 알맞고 왕궁과 도읍의 시스템이 완벽한 난공불락의 천연요새로서 그야말로 동방의 아크로폴리스에 손색이 없다. 우리는 2000여 년 전에 이러한 산세를 선정하여 성을 쌓아 천혜의 요새를 만든 고구려인의 슬기와 지혜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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