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사태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까도까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딸의 이상한 대학입학과 신청도 안했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장학금 의혹에서 시작된 조국일가의 온갖 수상한 일들이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해 보였던 윤총경과 버닝썬 사건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조국 일가의 비리수준을 넘어 권력형 비리로까지 확대될 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지금 대한민국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 사건의 중심에는 성숙되지 못한 정치권의 낡은 인식과 무능이 자리 잡고 있다. 좋은 정치라는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는 권력을 획득하고 분배하는 합법적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는 권력을 획득하는 기제일 뿐이지 분배와는 거리가 먼 시스템으로 작동해 왔다.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지 이후 분배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는 아예 고민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승자독식이나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조국 사건의 진실규명은 정치권을 떠나 검찰과 사법부로 넘어갔고 이 때문에 한 집안이라고 생각했던 집권 여당과 검찰이 갈등하는 기이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조국을 지키겠다는 보수·진보 진영 간 세 싸움으로 이어지면서 온 나라를 뒤흔들어놓고 있다. 처음 인터넷에서 시작된 유치한 실시간 검색어 순위 경쟁이 오프라인으로 확산되면서 광화문과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때 아닌 군중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이를 말려야 할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까지 나서 경쟁적으로 군중집회를 부추기면서, 지금 우리를 무슨 러시아혁명이나 문화혁명기로 회귀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반세기동안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유일한 개발도상국가였다고 자부해왔던 대한민국의 모습은 절대 아니다. 도리어 그 동안 이루었던 외형적 성장이나 제도적 민주화 이면에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 요소들이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새삼 각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또 다른 민낯이 바로 공영방송 KBS다. 제도적으로 보면 KBS를 비롯한 우리 공영방송제도는 영국의 BBC를 비롯한 몇몇 모범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공영방송사들 못지않다. 물론 광고 같은 상업적 재원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것이나 조직이기주의가 같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특히 민주화라는 전매특허를 가지고 집권에 성공한 현 정권은 방송에 일체 관여하거나 통제하지 않겠다고 공헌해왔고 얼핏 외형적으로는 그런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정치적 유대감이 강한 노조를 통한 간접적 통제형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제 현 정부 집권이후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고,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아래 이전 정권을 비판하는 데 몰입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심지어 KBS의 언론비평프로그램 출연자는 자기들이 조국에게 유리한 프로그램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그러니 당연히 공영방송사들의 편파보도나 정치편향적 프로그램들에 대한 지적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접적 혹은 자발적 통제시스템 특성상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의심은 심증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여권의 장외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유시민 씨의 경고 한마디에 대한 KBS 반응은 우리 공영방송이 여전히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KBS사장이 조국관련 취재진을 전면 교체하고 검찰유착과 관련된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즉각 발표한 것은 언론에 대해 일체 간섭하거나 압력을 가하지 않겠다고 한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그렇지 않아도 조국 사건과 관련해 침묵으로 일관하다 최근에 와서야 비판여론에 밀려 보도하기 시작한 공영방송사들에 대해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또 일방적으로 대통령과 정권의 편을 드는 보도태도들 때문에 신뢰도도 크게 낮아져 있다.

이번 조국 사태는 겉으로만 그럴 듯해 보였던 우리 정치나 방송제도들이 얼마나 취약하고 내면적으로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민들을 거리로 내모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구태정치, 여전히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못한 검찰과 언론 여기에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는 가짜뉴스 등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대한 총체적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어쩌면 말도 되지 않는 조국사태가 우리 사회를 다시 변화시킬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황근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