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습공화국이다. 돈 많고 권력도 있는 기득권층 부모를 만나면 무능한 사람도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 사회적 지위를 세습하여 기득권층에 편입할 수 있다. 기득권층의 민낯을 드러낸 ‘조국사태’는 세습공화국의 실상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조국 같은 아버지가 없고 사모펀드를 굴리며 인턴을 시켜줄 수 있는 어머니를 가지지 못한 대부분의 청년들은 좌절하고 있다. 우리의 평범한 부모들은 자신들의 무능력에 대해 가슴아파하고 있다. 이러한 세습사회에서 어느 누가 감히 부모가 되려고 하겠는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갈수록 하락하여 2018년에 0.98명으로 추락한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저출산 예산으로 150조 원이 넘는 세금을 투입했는데 한국사회의 초저출산 문제는 극복은커녕 더 악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저출산은 선진국들이 모두 겪는 문제이다. 경제발전과 함께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증가하고 가족제도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여성의 인식도 변화된다. 이제 여성들은 가정이 아닌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중요한 노동력이 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이 과거에는 여성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여성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결국 저출산은 여성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하나의 주체로 성장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혼을 전제로 한 출산문화와 가부장적 유교문화로 인한 성적 분업이 강한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낮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에서는 출산율이 높은 서구 복지국가들과 달리 혼외출산비율이 매우 낮고 자신의 일을 하고 싶은 여성들은 금수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결혼을 기피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특히 이들 국가에서 여성은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부담하면서 일과 가정 중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의 주요한 원인은 출산·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이라고 한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의 66.6%에 불과하다. 2015년 기준 OECD 회원국의 평균 남녀 임금격차는 14.5%에 불과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37.2%나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기혼여성은 출산할 엄두를 낼 수 없고, 직장경력을 쌓기를 원하는 비혼 여성은 결혼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 특히 ‘여성’이기 때문에 승진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한국의 직장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직장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더욱이 한국의 과도하고 비싼 사교육비와 높은 주거비용은 청년들에게는 비혼과 만혼의 원인이자 부부들은 출산을 미루는 주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결국 한국에서 걱정 없이 출산을 하고 돈 걱정 없이 자식을 키울 수 있는 경우는 부모가 금수저이거나 전문직 종사자들뿐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에서는 기득권층만이 자식을 낳고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저출산의 주요 원인인 성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은 단기간에 극복될 수는 없다. 보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가 되어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따라서 ‘세습’의 고리들을 제도적으로 혁파하면서 세습을 위한 모든 불공정 행위들을 엄벌해야 한다. 여성이 출산과 육아를 주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미혼모의 취업을 우선적으로 보장하고 양육비를 100% 지원해야 한다. 직장 내 성차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강력한 처벌을 하고 여성의 출산 및 육아 기간을 직장경력에 산입해야 한다. 공교육의 질을 높여 사교육이 필요 없게 만들어야 한다. 결혼을 거부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을 위해 일자리와 주거를 보장하는 정책도 시급하다.

 

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