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다섯은 귀신이 와 서는 것이 보이는 나이… 귀신을 기를 만큼 지긋치는 못해도 처녀 귀신허고 상면(相面)은 되는 나이.’ 서정주 시인의 시 ‘마흔 다섯’ 중 일부다.

이수익 시인의 ‘오십 근황’이란 시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쉰 살이 되니까 나도 반쯤 귀신이 되어가는 모양이군… 쉰 살이 되니까 내가 앞으로 내처 가야 할 길도,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군. 옛날에는 점술가한테서나 알아보던 그 길이.’

중년이 돼 삶의 마루턱에 서면 세상사 이치가 보이고 닥쳐올 일까지 대강 보이나 보다. 하기야 공자도 나이 40이면 불혹(不惑)이라고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던데.

링컨도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마디 했다. 굳이 해석을 하자면 뱃속에서 나올 때는 부모가 얼굴을 만든 것이지만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든다는 뜻이다.

이분들이 말했던 당시 나이 40에서 50은 지금으로 보면 50에서 60세 정도다. 나이를 먹어도 철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별로 실감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사람은 생긴 대로 논다’는 옛말이 틀리지는 않는 것 같다.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를 보면 관상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하도 혹세무민하는 관상가들이 많아 차라리 내가 보는 인상이 더 적중할 때가 많다.

백범 김구도 젊은 시절에 관상 공부를 했는데 자신의 얼굴이 거지 관상으로 판명되자 실망을 금치 못했으나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얼굴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이란 구절을 보고 마음을 바꾼 일화는 유명하다.

세상이 늘 그랬다지만 요즘처럼 궤변과 요설이 난무한 시절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체면이고 뭐고 최소한의 금도마저 사라졌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깜냥도 안 되는 사람들이 날뛴다. 나라가 온통 교언영색(巧言令色: 간교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의 사람들로 넘친다. 그들의 얼굴을 보라. 딱 생긴 대로 행동한다.

번듯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제 자리에 앉아야 세상이 편안하고 잘 돌아갈 텐데 소인과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설치니 제대로 될 턱이 없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은 헛소리인가.

세상은 뜻 같지 아니하고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승자독식의 탐욕은 끝을 모른다. 성호 이익은 이런 세상사를 잘 표현했다. "세상일은 놓인 형세가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이 운(運)의 좋고 나쁨이며, 맨 마지막이 옳고 그름이다." 슬픈 얘기다.

젊은 시절에는 살다 보면 ‘좋은 시절이 오겠지’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때가 좋았지’만 남았다. 당장 큰일이 터질 것 같고 곧 뭔 일이 일어날 것 같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야비해지고 저열해지고 있다. 미래, 혜안, 품격, 아량, 포용은 그들 머리에 없는 단어다.

신뢰는 책임을 먹고 자란다는데 거짓말은 기본이고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니 믿을 수가 없다. 민심의 물길을 막고 폭군의 전철을 밟고 있다. 지푸라기 하나가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릴 수 있고 국민의 소리는 쇠도 녹인다. 그런 순간이 오고 있다.

항암 투병 중인 이어령 전 장관은 마지막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딱 한 가지야.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그리스 사람들은 진실의 반대가 허위가 아니라 망각이라고 했어요. 요즘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서 그래요. 자기가 한 일을 망각의 포장으로 덮으니 어리석어요."라고 말했다.

힘들게 살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할 말이 아니라 지금 우리를 화나게 하는 궤변과 요언의 달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어떻게 흘러갈까?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까?

일을 하다 보면 누가 해도 될 일이 그 사람이 오니 안 되고 누구도 못할 일인데 그 사람이 오니 되는 일이 있다. 이육사의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오는 사람’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가끔은 사람이 ‘생긴 대로 안 놀 수도 있다’는 기적을 보고 싶다.

이인재 전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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