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들녘과 붉은들녘, 여기에 검은 들녘까지 드넓은 논에 펼쳐진 가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 위치하고 있는 ‘우보농장’. 도심과 멀지 않은 곳이지만 이곳에는 280종의 우리나라 토종벼들이 자라고 있다.
사람 키만큼 자라는 북흑조, 반면 무릎 아래로 자라는 졸장벼,쌀알이 큰 원자벼,일반 쌀의 절반 크기지만 맛은 으뜸인 흑갱 등.
저마다 각 자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가진 토종벼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농장의 대표는 이근이(52)씨다.
3평 주말농장에서 시작해 지금은 4천 평 가까운 논과 밭에서 토종벼 품종을 재배하며,지역 소농인들과 도시농부들에게 볍씨를 나누고, 쌀 맛을 서로 맛보고, 전시를 하면서 토종벼의 맛과 멋을 알리고 있는 이 대표를 지난 21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보농장인데,특별한 뜻이 있나.
"말 그대로 ‘우보(牛步)’다. 호(號)라기 보다는 사실 닉네임이다.워낙에 성격이 급하다보니 천천히 걷는 삶을 살아 보자했고,농사를 시작하면서 카페를 만들었고,카페에서부터 사용하는 닉네임이다.지금 한창 벼베기 중이다. 주로 공동체로 하니까 체험 행사도 하면서 교육도 하고,같이 벼베기도 한다.농장은 전체 4천 평이고 2천 평이 우보농장 내. 나머지는 농장 근처에 위치해 있다."

-본격적으로 농사에 뛰어든 계기는 무엇인가.
"농사를 짓기 전에는 문화 쪽 관련된 일을 했다.잡지도 만들고 음반, 웹, 평론까지 하는 문화기획자였다. 그러다가 동광원이라는 곳에서 주말농장으로 시작했고, 농사의 매력에 빠져 사람들을 모았고, 공동체를 시작하게 됐다.우보농장은 올해 9년차다. 그 전에는 떠돌면서 농사를 지었다.3평에서 시작해 농사를 짓다가 뜻 맞는 사람끼리 모여 200평 정도 얻어 4명 정도 공동체를 만들다 다시 새로 땅을 얻고 그러면서 한 때는 11개 공동체에 1만5천평까지 일구기도 했다.우보농장은 처음 정식으로 임대 받아 일구는 땅이다.농장 내에서 벼농사는 내가 직접 짓고 있다.마늘공동체,감자공동체,생강공동체 등등 밭작물 중심으로 공동체도 함께 하고 있다."
 

-‘토종벼 전도사’라 불리는데. 토종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처음부터 토종벼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 전에는 밭농사만 했다. 안정적으로 우보농장을 임대했으니,텃밭에서 재배한 것과 함께 밥상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밥도 내 손으로 한 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쌀을 내가 스스로 키워보자 했던 것이다.밭농사를 했을 때부터 중요하게 여긴 것이 씨앗이다. 직접 채종해서 계속 심는 그런 방식을 해왔다.씨앗 자체를 채종한 것이다. 옛날에는 다 이렇게 했다.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씨앗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런 씨앗이 토종씨앗인데. 벼에도 토종씨앗이 있다.30여 품종의 씨앗을 첫 해 심었고, 그 씨앗을 증식시켜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전국 토종벼 종자가 얼마나 되나.
"올해 우보농장에서 280종 정도 심었다. 지난해까지 150종 심었는데.전북 전주에 있는 국립 유전자원센터에서 토종 종자를 받아 130종 정도 더 심었다.한반도 벼 농사 역사가 5천년정도 된다.한 번 뿌리 내린 볍씨의 경우 그 지역의 땅과 기후에 맞게 자라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지역별 토종벼인데,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이 한반도 전역의 벼 품종을 조사했는데,1451종으로 나타났다.일본은 당시 쌀 수탈을 위해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종자(다마금,은방주)를 개발했고 이 때 토종벼가 한 번 사라지게 됐다.이후 1970년대 생산성 확대를 위해 전 국토에 이른바 ‘통일벼(추청)’를 보급하면서 다시 한 번 토종벼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사실상 토종벼의 99.9%가 사라진 것이다.현재 국립 유전자원센터에서 보존하고 있는 토종벼 볍씨가 450종 정도된다.이게 현재까지 남아 있는 토종벼 전부다."

-토종벼 확대와 복원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실 쌀은 잘못이 없다.우리의 역사 의식이나,종에 대한 태도,우리가 우리 것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해방 이후 토종벼에 대한 가치와 연구가 필요했는데,하지 않았다. 해방은 됐지만,우리의 주식인 쌀은 아직 일제 강점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우리 쌀이 일본 종으로 장악돼 있다.우리 조상들이 어떤 쌀을 재배하고,밥상에 올렸는지 뒤돌아 봐야 하지만,그렇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벼농사의 95% 이상이 관행농이다.관행농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고,대규모화 돼 있다. 여기에 맞는 벼 종자로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토종벼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어야 연구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하는데,심지를 않는다는 것이다.정확히 얘기하면 ‘못 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래도 이 속에서 토종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관행농법이 아니라 유기농이나 전통농법으로 미생물을 살리면서,미생물의 분비물로 먹이를 작물에 주는 농법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철저하게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농법에 맞는 품종을 찾을 것이 아니라 유기농이나 전통농법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농법 연구와 함께 토종벼 연구가 시급하다는 것이다.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우리 조상들은 어떤 벼를 심고,재배하고,밥상에 올렸는지는 알아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계획은
"우선 국립 유전자원센터에 보존돼 있는 450종의 토종벼 품종을 다 키워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280종 키웠으니, 170종 남았다. 마지막 품종까지 키워보고 싶은 꿈이 있다. 그러면서 토종벼 재배 농민들에게 다 나눠주고 싶다. 현재 ‘전국토종벼농부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데, 이 단체를 확산시키고 싶다.전국토종벼농부들이 각 지역마다 키웠던 품종을 재배하고 수확해 그 지역 주민들과 함께 나누는 모습을 보고 싶다.특히 내년 초에 세계토종벼대회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 대회에는 세계에서 각 나라의 토종벼를 지키고, 키워가고 있는 분들이 모여 전시도 하고, 쌀 밥맛도 보고, 예술행사도 함께 하는 대회를 준비 중이다. 장소는 한반도 최초로 재배 볍씨가 출토된 일산 대화동 가화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경기도와 고양시, 그리고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정재수기자


 우보농장은
여러 사람이 함께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 공동체다. 화학비료나 농약 등을 사용하지 않고 천연 거름으로 작물을 재배한다. 서로 재배한 작물을 나누고, 서로의 씨앗을 나누기도 한다. 토종벼 재배를 비롯해 마늘, 감자 등의 밭작물 공동체를 통해 함께 기르며 영위해 나간다. 도심 속 시민들에게 농사와 자연에 대한 교육과 함께 체험 활동을 제공하면서 서로 심고, 가꾸며 건강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터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219-1. blog.naver.com/lamotta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