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어느 자리를 떠날 땐 으레 ‘회자정리(會者定離)’ 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올바른 법을 가르치는 경전인 법화경에 나오는 낱말이다.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구(詩句)에도 회자정리의 뜻을 담고 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누구나 변하지 않고 영원히 머물 수는 없다.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 헤어지게 마련이다. 이게 삶의 진리다.

6년간의 경기도적십자사 회장직을 마쳤다. 지난 5일 이임식장에 많은 이들이 따뜻한 사랑을 담아줬다. 대한적십자사 박경서 총재,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에 여념이 없는 김희겸 경기도행정부지사, 의회가 개회중임에도 한달음에 달려온 송한준 도의회의장, 기우회 회장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회장인 염태영 수원시장 등이 자리를 값지게 빛내줬다. 동고동락하던 각도 적십자회장들도 멀리서 왔다. 제주, 충남, 대전세종, 인천, 서울 적십자회장들이 함께했다. 많은 지인들이 이임식장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이임자리를 환하게 비춰줬다. 어느 기관장은 "아니, 취임하는 회장한테는 얼굴 익히고 부탁할 일이 생겨 온다지만 떠나는 회장한데 무슨 부탁한 일도 없을 텐데, 이렇게 이임식에 많이 온 건 처음 본다고."고 웃음 섞인 말을 했다는 전언이다.

누구나 떠날 때 성과보다 아쉬움을 더 들어내게 마련이다. 6년 전, 회장에 취임하며 조직을 좀 더 활기차게 젊은 조직으로 탈바꿈 해 보겠다는 뜻을 지녔다. 대한적십자사는 올해 114년, 경기적십자사는 72년이다. 관료화된 딱딱한 조직을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조직, 탄력 있는 조직으로 사고(思考)의 전환과 함께 바꿔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지방분권화시대에 맞게 지역과 밀착된 조직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경기도를 비롯해 31개 시군에 ‘적십자사 인도주의 활동지원 조례’ 가 제정되었다. 조례에 의해 어떻게 적십자가 활용해야 하는지를 현직 시의원을 초빙하여 특강을 듣고 질의응답도 가졌다.

적십자는 100% 국민성금으로 인도주의사업을 펼쳐가는 조직이다. 국민이 적십자의 주인이다. 국회에서 한 푼의 예산도 편성되지 않지만 국정감사를 받는 유일한 기관이다. 아직도 국민은 ‘내가 적십자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희박하거나 아예 ‘아니다’라는 부정적 시각을 가진 이들도 있다. 재임 중에 도민을 대상으로 ‘과연 각계각층 도민은 적십자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진솔하게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를 기반으로 6년을 달려왔다. 보건안전, 혈액사업, 재난구호, 국제협력, 이산가족, 청소년적십자(RCY)단원 육성 등도 중요하다. 하지만 곳간이 텅 비어 있으면 아무리 좋은 인도주의 사업도, 재난구호 활동도 지탱할 수가 없다.

안정적 재원 마련에 역점을 뒀다. 모금사관학교를 개설해 모금 전반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다. 기업 대상의 ‘씀씀이가 바른기업’ ,‘레드크로스피풀(red cross people)’ 등은 경기적십자가 창안한 모금프로그램이다. 경기도출신 국회의원 60명을 대상으로 ‘희망나눔명패달기’ 캠페인을 벌여 57명이 가입했다. 일정금액을 매월 계좌 이체하는 프로그램이다. 국회의원회관 각 의원실 입구에 이 명패가 달려있다. 사회공헌팀을 두고 각 기관, 단체, 기업과 사회공헌협약을 늘려갔다. 인도주의 사업의 확산을 위해서다. 1m1원 자선걷기대회, 희망나눔페스티벌 등 다양한 인도주의 활동을 통해 나눔문화를 확산시켰다.

적십자사는 글로벌 재난구호기관이다. 재난이 있는 곳에 먼저 달려가 구호품을 전달하고 급식제공, 세탁물 처리를 한다. 도내 1천여 개 조직에 몸담고 있는 7만5천여 명의 자발적 적십자봉사원은 어떤 이익도, 아무런 대가(代價)도 추구하지 않는다. 적십자 창시자인 앙리뒤낭의 ‘우리 모두는 형제다’라는 적십자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할 뿐이다. 적십자봉사원이 위대한 이유다. 적십자봉사원은 적십자의 고귀한 자산이다. 난 그들이 있어 행복했다. 이임식에서 31개시군 대표들이 장미 한 송이씩을 들고 나와서 차례로 내 손에 쥐어줄 때 마음이 울컥했다. 6년 간, 그들의 체온이 식지 않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난 봉사와 나눔, 그 찬란한 세계를 결코 잊지 못한다.

김훈동 시인, 전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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