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고귀(高貴)한 이름이 있다면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일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 처음하는 말은 "엄마"라는 소리였다. 하느님은 우주(宇宙)를 창조하고 주재(主宰)한다고 믿어지지만 언제 어디서고 계시지 않는다. 그래서 하느님은 대신(代身) 어머니란 실재의 존재를 만드셨나 보다.

어머니는 신격(神格)에 비견(比肩)되는 축복받아 마땅한 호칭을 얻고 나서 무궁한 사랑과 용서와 헌신, 그리고 희생을 몸소 보여주신 어머니였다. 평소 화장(化粧) 한번 안하신 얼굴에 마른 가을 하늘 수풀같이 헝클어진 흰머리, 거칠어진 손마디, 헤아릴 길 없는 삶의 애환을 지녔다. 자식 걱정 가슴 아파도 내색 않는 어머니. 어쩌면 남몰래 가슴앓이를 애써 참으셨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생각나고 보고 싶은 어머니. 필자(筆者)가 이역만리 월남 전선(戰線)으로 떠날 때 붙잡고 흐느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돌아가신 후에 그리움을 알아 은혜롭고 따뜻한 가슴으로 기억되곤 한다. 어머니의 얼굴 꽃이라는 슬픈 아픔의 자리에 열매가 열린다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 어머니의 자리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눈보라의 나무 삭풍(朔風)을 견디며 살아온 지난날 소중했던 어머니의 사랑은 가신 후에 아득히 밀려온다.

암울했던 시절 허리띠 졸라매고 자식들 끼니 걱정에 한 숟가락 더 먹이려 애쓰시던 어머니 가난은 끝이 없었다. 성인(聖人) 말씀에 따르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였다. 마음이 가난한 것은 인생에 대한 겸허성(謙虛性)을 뜻한다. "홀연히 천사(天使)가 당신 식탁 앞에 오시거든 당신 빵 아래 깔린 나프킨의 주름살이나 살며시 펴두렴. 그리고 당신의 가난한 상(床)을 그대로 대접하렴. 천사께서 스스로 가난한 자의 음식을 맛보시고 그 순결한 입술을 가난한 당신 컵에 닿으시리니."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노래한 작품의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조용히 하라는 것은 우리의 끝없는 욕구를 쓰담아 다스려서 겸허한 마음으로 인생을 수납(輸納)하라는 뜻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만이 천사와 같이 할 뿐 아니라 스스로 충족됨을 깨닫고 겸허한 마음으로 비어놓는 자에게만 행복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이는 마치 마음의 꽃밭에 머무는 나비와 같다. 우리 어머니들은 가난하게 살았어도 예전부터 자녀들 교육 열정은 대단하고 억척스러웠다. 조선의 명필(名筆) 한석봉의 어머니 홍주 백씨는 밤이면 별이 보이는 허름한 지붕 아래 떡장수를 하며 석봉을 중림정사 라는 절로 보냈다. 10년 세월의 변한 강산(江山). 어머니와 이별 속에 공부한 석봉은 어머니가 보고 싶어 왔건만 어머니는 호롱불을 끄고 떡을 썰고 석봉은 글을 쓰게 했다. 불을 켜고 보니 어머니의 떡은 간격이 정확했고 석봉의 글씨는 엉망이었다. 어머니는 하룻밤도 안 재우고 떠나라 했다 다시 절로 간 석봉은 각고의 노력 끝에 한문의 기초가 되는 천자문(千字文)의 입문서를 편찬하였다. 지난 10월 29일 92세로 별세하신 문재인 대통령 어머니 강한옥 여사의 강직함은 문 대통령의 인생관에 큰 영향을 주었다. 평소 성품이 조용하신 어머니는 새벽마다 성당에 나가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무도 대통령 어머니인줄 알지 못했다. 1950년 12월 흥남에서 거제도로 피난 내려와 살길을 찾아 부산 영도에 정착했다. 낯선 곳 가족에게 기댈 곳은 없었다. 어머니는 행상에 연탄 배달로 2남3녀 학비 마련 가정 경제에 젊음을 바치셨다. 백년을 살고 나서야 꽃이 피는 참대나무는 우리나라 모든 어머니들의 거룩한 삶의 발걸음이었다.

이명수 동두천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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