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생신을 맞으신 부친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책이다. 100쇄 기념 에디션이 나올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책인 것 같아 바로 열어보니 첫 이야기부터 뭉클한 감동이 전해진다.

필자의 부친은 평생을 공무원으로 사시고, 정년퇴임 후에는 수원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 ‘하상신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시고, 지금은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한복집, 이불가게를 맡아 보시며, 그 사이에 성당에서 봉사도 하시고 교리도 가르치시며 논밭일도 거드시는 등, 수년 전 고희(古稀)를 넘기셨음에도 40대 못지않은 열정으로 살고 계신다.

아버지는 최근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책을 접하시고, 그 내용에 깊이 감탄하시며, 한 방송의 성우 목소리로 들려주는 책을 듣기 위해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책을 여러 권 사서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시며 이 글을 잘 읽고 내용을 마음에 새기며, 아이들에게도 꼭 읽혀 교육해 주기를 당부하셨다.

나는 과연 아버지 나이가 돼서도 그와 같은 열정을 지닐 수 있을까? 나에게 열정을 일깨우는 동시에, 학교 일에 파묻혀 정신없이 사는 내가 잠시 길을 멈추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들에 눈을 뜨도록 인도하시니, 아버지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 살아 있는 교육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살아온 기적 그리고 살아갈 기적… 장영희는 수필가이면서 영문학자로, 생후 1년 만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 장애를 갖게 되어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세 차례 암이 발병하여 200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애와 병에 굴하지 않고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고 한다. 그 힘겨웠던 삶을 이겨낸 삶을 향한 열정은 그가 죽은 후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련 속에서 굳건히 견디며 새롭게 살아갈 용기와 힘을 전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기적’이라는 것이 무얼까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성경의 복음서를 보면 예수라는 인물이 나타나 수많은 기적과 치유를 일으킨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늘의 과학기술적 사고와 세계관을 가진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받아들일 수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필자는 장영희 작가의 글을 읽으며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의 기적들이 우리 삶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소소한 기적들에 눈을 뜨도록 초대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였다.

예수와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당시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상처 입고 병든, 아무런 희망도 발견할 수 없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예수와 만나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복음서가 속 시원히 밝혀줄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건 그들이 예수라는 인물을 만나 희망과 믿음을 회복하고 삶을 새롭게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기적 이야기들은 이천 년 동안 이어지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용기와 희망을 주어 왔다.

우리 삶에는 소소한 일상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기적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기적이 가능함을 일깨워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괴로움과 고통, 두려움과 의기소침 속에 사는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누군가, 그리하여 우리 삶에 새로운 기적들이 일어나도록 영감을 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장영희 선생은 자신의 장애와 병마를 극복하여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죽은 후에도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삶의 열정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영감 받은 이들이 그 뒤를 이어 계속해서 삶의 희망과 환희를 노래하도록 한다.

‘삶은 고해(苦海)다’라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처럼, 삶에서 시련은 끊이지 않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 삶을 채워가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갈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는 고통스러운 삶과 시련이 우리를 영원히 지배할 수 없고 삶의 돌파구가 분명 있기 때문이며, 그 돌파구를 찾고 새로운 삶의 길을 걸어간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적, 그것은 어쩌면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것인지 모른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 힘과 용기를 얻어 두려움과 공포, 의기소침과 우울함, 분노와 원한에 굴해 주저앉지 않고 일어설 때, 나의 삶을 그 누군가와 나누며, 시련 속에서 버티며 서로 기대어 계속해서 앞으로 나갈 때, 기적은 분명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묻는다. 인간의 마지막 한계인 죽음까지도 넘어서도록 하는 그 희망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민택 수원카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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