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야하게 보일 오래된 국내 영화 제목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면 선입견보다 초인종을 누를 때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누른다는 단순한 뜻임을 알고 실망할 수 있다. 이어령의 희곡 제목이기도 한 영화는 고급 콜걸의 집을 단골 고객이 찾을 때 누르는 초인종 비밀 신호로 시작한다. 하지만 상상을 넘어 영화의 러닝타임은 길고 지루하다는 당시의 평이 곁들인다. 장미희 등 당대 유명한 배우들의 에로신 마저 관객들을 실망시켰다나... 그래서 방범에 취약한 당시, 초인종을 누를 때 아빠는 짧게 한번, 엄마는 짧게 두 번, 이런 식으로 누른 횟수의 비밀이 생겼다. 하지만 듣는 데만 의존하는 초인종에 관한 일화는 아파트 비디오폰의 등장으로 전설이 됐다. 나는 이 즈음 초인종의 횟수가 사회나 가정에 변화를 주는 것만이 아닐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한일 관계의 갈등이 마치 두 나라 국민들을 과거 초인종의 철렁함처럼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고 있다. ‘도대체 어쩌자는 얘기냐’는 공통적인 의문이다. 지금까지도 두 나라 정부는 바닥으로 떨어진 외교관계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일 갈등을 각국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게 하고 있다. 사실상 서로를 찾은 여행객의 수를 놓고 혹은 불매운동 여파 등 경제논리에 결국 두 나라만 손해를 안고 있다. 서서히 일본 언론조차 자국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우려하고 한국 경제는 부품·소재 수출규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만 부심하고 있다. 관광공사의 복잡하고 때로는 고도의 수학 능력을 필요로 하는 방문 통계는 뒤로하고 얘기는 이제 일본과의 갈등을 어떻게 끝내야 하느냐에 달렸다.

7월 초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로 본격화한 한일 갈등이다. 그 뒤로도 악화일로를 걸으며 여전히 길어질 기미가 보일 때 그래서 한일 관계를 이대로 두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을 때 문희상 의장이 등장했다. 서로가 ‘눈에는 눈’식의 대응을 이어갈 때 갑작스런 문 의장의 해법 제안이 두 나라에게 호감을 가지게 했다. 결국 한일 외교가 자존심과 구호, 대의명분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문 의장 해법이다. 일본 주력지인 아사히신문이 사설을 통해 혐한을 부추기는 자국 언론의 행태에 양국 정부에 대해 상대국을 공격하기만 해서 얻을 것이 없고 설사 문제가 있어도 선린 관계를 지향해야 하는 원칙이 없다는 지적도 여기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시 보자면 어찌 됐건 한일 두 나라는 떨어질 수 없는 이웃이란 얘기다.

오랜 전쟁과 반목에도 두 나라는 교류와 이해를 통한 노력을 이어왔고 이번에도 민간 축제와 만남은 여전히 계속됐다. 그 이면에는 지금 중단하면 다시 만나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급박감이 통했을 것이다. 두 나라의 공통 주제인 ‘미래’에서다. 아무것도 못하면 그 피해는 기업과 국민들의 몫이다. 서로의 미래 세대에게 씻지 못할 상처다. 물론 자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정치가들이 골몰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 평가를 더 두려워해야 한다. 문희상 해법으로 징용 배상 갈등부터 이제는 풀어야 할 때다. 그 중심이 한·일 기업과 국민의 기부금으로 재단을 조성,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내용이다.

그래서 이러한 문 의장에 해법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해법이 성사되면 두 나라는 적지 않은 유형무형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야말로 고개만 뻣뻣이 세우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이 해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소식이고 우리 안에서도 이 해법을 중심으로 빠른 시일에 징용 배상 갈등 해소를 위한 협의를 개시해 두 나라의 갈등을 치유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다. 서로의 자존심을 둘러싼 언론의 그것들은 유치해 자칫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소미아 종료를 유보하고 WTO 제소도 정지해 막장을 피하면서 나온 해법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일본이다. 세 번의 긴 협상이 될지 아니면 짧은 세 번의 ‘밀당’이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럼에도 모처럼 두 나라에서 호응을 얻은 문 의장 해법에 올인을 해야 하는 이유는 이제 시간이 점점 모자라며 희미해져 가는 이유다.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위로금의 의미를 따지고 피해자 단체들의 만족도를 완전하게 꾸며 가자면 한도 끝도 없을 얘기다.

당장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식의 얘기만 되풀이하면 처음으로 돌아간다. 엄청난 수의 배상 대상자 규모라도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서로의 진정성만 탓하면 이 역시 시작에서 맴돈다. 자신을 ‘복 돼지’로 까지 희화해 정치 중심에 서 있는 문희상 의장이 제대로 한 방 날린 해법으로 보인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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