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케한 연기/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폭발음/ 그 사이로 체인 한 줄이 끊어진 리프트에 아슬아슬 하게 매달린 두사람/그 밑은 짙은 불바다/한 손은 리프트 또 한 손은 한때 동료였던 범인의 손을 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소방관/자신의 손을 놓으라는 전동료의 절규에 주인공이 내뱉은 한마디 ‘유.....고,....위.....고(you go, we go)를 힘겹게 읊조리며 같이 떨어진다.

오래전(1991년) 개봉한 영화 ’분노의 역류‘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은 어느덧 십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소방대원의 희생과 헌신에 합당한 대우와 지원을 했는지를 생각하면 부끄러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이 우리에게 영웅으로 인식되는 시점은 국가적 재난이나 큰 화재가 났을 때 뿐이다.

평상시의 그들은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머슴에 가까웠다. 위급한 순간에 찾아야 할 119구급대원에게 잠긴 문을 열어달라거나 또는 반려동물 찾아달라, 술 취했다며 집에 데려다 달라는 등을 수시로 요구했다. 심한 경우엔 본인을 위해 달려온 구급대원을 폭행하는 사건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소방관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장비도 열악했다. 지방직이다보니 장갑, 방화두건 등 그 밖의 개인보호장비는 지방자치단체별로 품질에서 차이가 날수 밖에 없었다. 그것 조차도 제때 지급이 안 돼 개인이 사비를 들여 사는 일도 벌어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지난달 전국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법안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것이다. ‘광주 소방헬기 추락사고’ 이후 국회가 국가직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5년 여 만이다. 법안 통과에 앞서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경기인천 시민들을 대상으로 소방관의 국가직 전한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기·인천 주민 10명 중 8명은 지방직 공무원 신분인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데 찬성한다고 답했다

그동안 미온적인 입장을 취했던 자유한국당의 지지층과 보수층을 포함한 모든 지역, 연령, 이념성향, 정당 지지층에서도 대다수가 찬성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적어도 소방관의 처우를 향상시켜야 한다에는 이념을 초월한 셈이다. 이번 법안 통과로 소방공무원의 지위는 내년부터 국가직으로 변경된다. 당연히 장비나 처우 등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전체 소방공무원 5만4천875명 가운데 지방직이 98.7%(5만4천188명)이고 국가직은 1.3%(687명)이다. 99%에 육박하는 지방직 소방관이 내년 4월부터 국가직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또 소방사무에 대해서는 시·도지사의 지휘·감독권 행사를 원칙으로 하되, 화재 예방이나 대형 재난 등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소방청장이 시·도 소방본부장과 소방서장을 지휘·감독할 수 있게 된다.

앞서 밝힌대로 소방공무원은 시·도 재정 여건에 따라 소방 장비, 처우 등이 상이해 문제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제 법안통과로 모든 국민이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듯, 소방관도 지역에 관계없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런 변화는 소방대원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국민 안전을 위해서도 참 다행스런 일이다.

전 세계 소방관들의 신념이자 2001년 홍제동에서 있었던 화재에서 순직한 소방관들 중 한 분인 김철홍 소방관의 책상에 놓인 이 시로 이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소방관의 기도’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언제나 집중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하소서./그리고 당신의 뜻에 따라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부디 은총의 손길로/ 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주소서.

신정훈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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