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나라가 절단 날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국민은 서로 원수가 되어 갈라지고, 정치는 파탄이고, 경제는 피폐해지고, 안보는 위태롭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 있으며, 핵심 문제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이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 암울하다. 바꾸어야 할 때 바뀌지 않으면 급속하게 쇠퇴해지고 썩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물살을 헤쳐나가기는커녕 뒤로 밀려가 빠져 죽기 일보 직전이다. 임진왜란 직전 조정은 시끄럽고, 난국을 해결할 인재는 보이지 않고, 백성들과 병사들의 양식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이율곡은 선조에게 상소를 올린다.

"2백년 역사의 나라가 2년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그러니 조선은 나라가 있어도 나라가 아닙니다(其國非其國). 이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촛불시위 때 유행했던 "이게 나라냐?"와 지금 현 정권에게 향한 "이건 나라냐?"와 똑같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떤 길에 들어서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정치, 경제, 사회, 안보, 문화 거의 모든 면에서 가치관과 세계관의 불꽃 튀는 격돌을 겪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명운을 좌우하고 있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면 지금은 우리의 자유와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을지의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소름끼치는 상황이다.

선동과 선전, 간교한 말과 감성팔이 쇼는 잠깐 국민을 속일 수는 있지만, 결국 진리와 진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신념이 틀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국민 개개인은 각자 주어진 틀 안에서 활동한다. 틀을 결정하는 곳이 정치이며 이를 추진하는 주체는 정치인이다. 따라서 정권을 잡은 세력의 전횡은 무력과 똑같다. 국민은 자칫 바보로 전락할 수 있다.

명말 청초의 사상가 고염무(顧炎武)는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 천하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 당시는 권력자들이 백성을 개돼지 취급할 때였다.

지금은 4년이나 5년마다 투표로 정치인을 갈아치우는 시대다. 빼앗긴 것은 찾아오면 되지만 포기한 것은 찾아올 수가 없다. 방관자는 파괴자와 똑같다. 한번 무너진 나라를 다시 회복시키는 일은 어렵다.

루쉰은 일본 군인들이 중국인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구경하면서 남의 일처럼 낄낄거리는 중국인들을 본 순간 의사의 길을 접고 사회개혁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김광규 시인이 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가 있다. 학생 시절 4·19 민주화운동을 맞아 불의에 맞서 싸우던 친구들이 18년 만에 만나 느끼는 회한을 담고 있다. 변해 버린 친구들의 모습을 회상하며 시인은 두 번이나 "부끄럽지 아니한가"를 뇌까린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못하는 무딘 존재로 전락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던 것은 아닐까? 분노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다.

이인재 전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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