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건강함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는 다양하다. 무역항이나 교통요충지 등 특별한 기능을 갖는 도시들은 예외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들은 물과 에너지와 식량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게 방어할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이 되는 곳에 건설되었다. 특히 한 나라나 넓은 지역의 중심이 되는 도시들은 이런 특성들이 강했다. 그런 장소를 찾아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하고, 우물을 파고 도로를 놓았다. 산업구조가 복잡하지 않던 시절 대게 농업생산을 중심으로 도시가 조직되었고, 도시의 강과 하천은 오늘날의 상하수도 기능은 물론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기능까지 겸했고 자체로 하나의 어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배산임수’라는 풍수지리 용어는 매우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오늘날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 인프라와 산업구조도 복잡해지면서 도시의 기능과 효율은, 산업구조를 지탱하는 생산과 소비의 중심축으로 다시 조직되고 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도시가 갖추어야 할 기초역량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매 한 가지라 생존과 욕구 충족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자원(물, 에너지, 식량)이 도시의 필수 요소인 것은 당연하다. 도시의 모든 인프라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평시에는 잘 느낄 수도 없지만, 기초 자원에 대한 외부 의존성이 강해짐에 따라 전통적인 도시의 기본 구조와 기초역량은 주목받아야 마땅하다. 우리 몸이 건강할 때는 잘 모르지만, 피로가 누적되거나 나이가 들어서 몸이 약해지면 전체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져서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기면 그때 가서야 건강에 신경쓰기 시작하는 현상과 비슷할 것이다. 사실 도시의 취약성이라는 것도, 불필요한 능력은 굳이 평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도시의 필수적인 역량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 도시는 이 강한 의존성 때문에 필수 자원의 자급률에 주목하지 않는다. 제도에서도 정책에서도 주요 지표에서 자급률은 후 순위다. 광역공급망에 의존하든 수입에 의존하든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면 자급률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가 되면서, 다시 말하면 우리 몸이 건강을 잃듯 도시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이 의존성이 강하고 안정적인 공급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과학적 예측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기후위기는 생존을 위한 필수 자원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에너지 등 자원의 과다 소비가 기후위기를 촉진하고 다시 기후위기가 물 부족과 양질의 농지 감소를 가속하고 에너지전환을 강제한다. 경기 남부 도시들은 당진과 서산, 태안의 화력발전소에서 공급하는 전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2천300만 서울과 경기도 인구는 팔당상수원 하나의 ‘우물’에 목을 매고 있다. 식량 자급률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나마 남아도는 쌀 생산 때문에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2%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곡물 자급률이 20%대인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그나마 일본은 이 식량에 대한 국가 차원의 중장기 기본계획은 마련해 두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마저도 없다.

그렇다면 원래 그랬을까? 대부분의 도시에 자체 상수원이 있었지만 지난 두 정권에서 집중적으로 지방상수원(보호구역)을 해제하고 광역상수원으로 통합을 가속했다가 곳곳에서 물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이러한 보호구역과 그린벨트, 우량농지를 희생해서 도시는 자기 몸을 부풀려왔다. 건강한 녹지가 사라지니 지하수라고 남아있겠는가? 더 심각한 것은 도시 부풀리기 형태가 지역의 여건도 고려하지 않은 채 전국으로 유사하게 퍼졌다는 것이다. 대부분 도시에서 인구는 줄어드는 데도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 도시는 필수 자원 자급률을 희생해서 키운 기형적인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대하게 몸만 불리면서 좋은 음식도, 운동도 멀리하다가 건강을 해친 경우이다. 지금이라도 도시마다 스스로 크고 작은 물그릇을 확보하고 도시 가까운 농지들을 보존해 건강한 먹을거리를 공급할 정책을 펼쳐야 한다. 가능한 자체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태양광과 풍력, 지열 등 재생에너지확대를 위한 정책에 예산과 인력을 늘려야 한다. 도시의 필수 자원문제는, 버스 공영제처럼 사적 영역이라도 공유자원 관리 시스템 안에서 풀어가야 한다. 이를 위한 제도화와 사회적 대 합의가 시급하다.

윤은상 수원시민햇빛발전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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