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존재하는 스포츠 중에 가장 사람들이 좋아하는 종목은 단연 축구다. 유럽의 4대 명문 축구리그는 언제나 전세계 모든 언론들의 뜨거운 관심거리다. 수만 명의 선수들이 수십 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다투는 올림픽보다 축구 한 종목만 하는 월드컵이 훨씬 높은 인기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은 우리 국민들뿐만 아니라 모든 아시아인들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이렇게 축구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주장들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쉽고 단순하다’는 것이다. 실제 축구는 아주 단순한 운동이다. 간단히 손만 쓰지 않고 상대방 골대에 공을 집어넣으면 되는 것이다. 듣기로는 규칙도 몇 개 안된다고 한다. 때문에 아주 어린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스포츠도 축구다. 반면 야구나 미식축구는 미국인들은 열광하지만 정작 세계적으로 확산되지는 못하고 있다. 야구는 21세기 들어 겨우 올림픽 종목에 포함되었지만 이번 도쿄 올림픽을 끝으로 영구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 미식축구는 아예 미국 땅만 벗어나면 거의 볼 수 없는 운동이라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처럼 야구와 미식축구가 대중화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경기방식이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소수 매니아들은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 스포츠가 되기는 어렵다. 더 나아가 복잡한 경기방식과 규칙은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게 만든다. 경기력이 아닌 복잡한 규칙이 경기를 지배하고 승패에 영향을 미쳐 팬들로부터 외면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축구에서는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승패가 좌우되거나 팬들이 이해할 수 없는 판정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이 때문에 축구는 실력으로 겨루는 공정한 게임이라는 인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국가에서 정치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일종의 게임이다. 패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정치체제 자체가 붕괴될 수 있어 게임의 룰은 매우 공정해야 하고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선거제도는 필수조건이다. 다수결방식이나 직접투표가 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저런 복잡한 선거절차와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승패결정방식은 반민주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번 국회에서 통과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개정 선거법을 보면 도대체 일반인들은 알 수도 이해하기도 힘들다. 심상정대표 말대로 ‘국민들은 몰라도 되고 알 필요도 없는 선거제도’다. 한마디로 내가 찍은 표가 누구를 당선시키고 어느 정당에게 유리한 것인지 조차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제도다. 마지막에 빠지기는 했지만 무슨 ‘석패률’이라는 듣보잡까지 얹으려고 했으니 이게 정말 민주주의 선거제도인가라는 강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제1야당을 뺀 몇 개 정당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든 야합의 결과물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렇게 불공정하고 애매한 룰 아래서는 플레이어들 또한 당연히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이 추진하겠다는 이른바 ‘비례한국당’을 놓고 누구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쉬운 말로 ‘너희들도 하면 되잖아!’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처럼 대중의 공감과 동의를 획득할 수 없는 선거제도는 선거 자체를 왜곡시키게 될 것이다. 내년 총선은 그야말로 ‘아수라’ 아니 ‘○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용어를 보면 대학시절 현대정치이론을 강의하셨던 모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민주주의라는 단어 앞에 무슨 무슨 단어들이 붙으면 그것은 다 가짜·사이비 민주주의다. 한국적 민주주의도 그렇고 인민민주주의도 그렇고 그것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전체주의일 뿐이다." 또 ‘비례한국당’이니 ‘비례민주당’이니 하는 비례대표 정당들은 마치 유신시절 ‘유신정우회’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고 보니 ‘유신정우회’도 독재 정권이 만든 것이다. 스포츠도 그렇지만 민주주의와 선거는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좋다. 이런 저런 부언설명이 많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속은 구리다는 것일 수도 있다.

황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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