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목부터 ‘썩은...’으로 바꿔 달까 하는 생각이었다. 화도 나고 그 이상의 얘기라도 국민들의 마음은 너그러울 것이며 넘겨 집기로도 가능했을 생각에서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정치는 아직도 교과목부터 신문 지면의 순서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순으로 그만큼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매김 된지 오래다. 더구나 한물 간 사람의 구차할 수 있는 의견으로 지금부터 펼 칠 긴 얘기를 시작한다는 것도, 살짝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닌 탓에 정치란 주제는 조심스럽지만 자유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정현, 그는 박 전 대통령 탄핵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인사다. 더구나 구태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역시 자신을 상한 국 안의 상한 건더기로 여긴다. 심지어 꼰대로 불릴 수 있는 58년생 개띠로 잊힌지도 꽤 됐다. 그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자유한국당을 탈당, 중앙정치를 떠나 하기 쉬운 말로 민심의 공기 안에서 살짝 유배 생활을 자청해 온 아직은 정치인이다.

그래서 그는 무소속 의원이다. 하지만 그는 모두의 눈에 띨 번쩍이는 새롭지는 않지만 열흘 굶은 사람이 식은 빈대떡 한 판을 본 듯한 그 무엇인가를 들고 나왔다. 어디서 본 듯한 ‘판 갈이론’이다. 이것 하나로 여의도 컴백이 가능할까 하는 우려는 충분하다. 하지만 박근혜 호위무사에서 심지어 박근혜의 입으로까지 불려 그 정부와 흥망성쇠를 함께한 그는 이번에 "국물만 갈지 말고 한 번쯤 국그릇째 갈아야 한다"는 어쩌면 스테레오 타입의 고스란한 목소리를 더 높여 일단 주목도를 높였다. 나는 이 즈음에서 상한 국의 그 건더기라도 건질 수 있는 무엇이라도 있다면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기 어렵다. 그 역시 내년 초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정당의 슬로건과 본질에 대해 말했다. 진보와 보수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이른바 ‘캐치 올 파티(catch-all party)’ 다.

안철수도 아니고 자기가 무슨... 더구나 상한 건더기가. 물론 그는 올드 한 자전거를 타고 재래시장을 돌며 이른바 험지라는 호남에서 당선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새로운 정치 환경을 만드는 데 밀알이 되겠다고 강조한 부분이 정당화되거나 당위성을 부여하긴 어렵다. 그 말고도 지역구도 타파라는 정치적 목표를 이룬 의원은 여당 내에서 더 있고 정치인의 입을 있는 그대로 믿을 국민도 씨가 말라 가면서다. 그는 이번에 아예 영호남도 아니고 수도권에서 출마하겠단다. 파격이라 해도 이미 성한 인터뷰 마이크는 죄다 꺼져 그의 호기 역시 공중에 맴돌고 있은 지 오래다. 물론 오래전 국회 출입기자를 거친 나의 기억으로 그는 오랜 기간 국회의원 비서에서 3선에 이르기까지 당 사무처 말단에서 당 대표까지, 멀미가 날 정도로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래서인지 기존 정당의 한계를 빨리 느꼈고 어떻게 해야 총선에서 선택을 받을지에 대한 영감도 떠올랐을 얘기다.

잘라 말해 국민들이 국회에 느끼고 있는 피곤함에 절반의 물갈이로도 정치 불만이 해소될 분위기가 아니다. 모르지 않는다. 나라를 반쪽으로 갈라놓은 여당과 무기력하고 거리로만 나가는 야당 모두 싫다는 결론에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정치의 불신을 한 번에 걷어 낼 수 있는가. 잘못된 그림에 덧칠하지 말고 도화지를 통째로 갈아야 한다는 그의 얘기는 마치 사다리가 잘못 놓여졌다면 내려와서 다른 방향에 사다리를 얹혀야 한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 상황이 그렇다. 과거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 하고 싶어 말한 ‘40대 기수론’만이 아니다. 투표권이 고등학교로까지 내려간 현실에 2030세대 주축의 미래 세대 참여가 절실하다. 거창한 미래지향적인 얘기들로 본질을 흐릴 생각은 없다. 이 의원이 말하는 빅텐트도 칠 때가 되면 자연스레 설치될 것이다. AI를 얘기하면서 미래세대의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 2·30대 의원이 부족하면 모두 무용지물이다. 지금 우리 정치는 가히 혁명을 필요로 한다. 제대로 꾸릴 시간도, 그 어떤 정책으로 곽 찬 출발도 미심쩍어서다.

이념보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젊은 전문가가 우선이다. 이 의원이 본 일본의 자민당 안 다양한 스펙트럼이 답이다. 언제까지 이념 안에 사로잡혀 옆 의원에 눈치만 봐서야 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멀리 정당 사무실 안에 박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이 함께 걸려 있어야 한다는 이 의원 소망이 억지일지 아니면 가능한지도 이번 총선에 달려있다. 이 나라는 지금 모든 면에서 비정상을 넘어서고 있다. 국가라는 옷에 정치라는 단추부터 잘못 닫혀지면서 였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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