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영화 ‘기생충’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는 낭보를 전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한국 영화 최초’로 지난해 5월 세계 최고 권위의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또다시 한국 영화 최초로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미국 할리우드의 벽을 당당히 넘어선 기생충이 내친김에 다음 달 열리는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하기를 기대한다. 기생충에 등장하는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의 대립구도는 ‘집’을 통해 상징화된다. 그들의 집은 두 가족의 삶의 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다. 계층 간, 계층 내 대립구도를 봉준호만의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 기생충은 오늘날 한국의 자화상이자 전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스토리이기에 아시아, 유럽, 북미 등에서 큰 공감대를 얻었으리라. 기생충은 시작과 동시에 포스터의 의미심장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겹치며 결말이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흥행 요소가 뭐든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이 함께 잘살기를 바랐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가난한 가족이 안고 있는 복잡한 관계의 꼬임은 뒤로하고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자년(庚子年) 맞이 신년사에서 ‘함께 잘사는 나라’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기를 주문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중에서도 부동산 문제는 ‘투기와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며 굳건한 신념을 드러냈다. 부동산 시장의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역대급 고강도 규제로 꼽히는 12·16 대책을 포함해 정권 출범 이래 18번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음에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선포에 앞서 이를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주무 장관은 눈물을 보이며 결의를 다졌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현역 의원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1대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1962년생, 일산(고양정)을 지역구로 둔 3선의 김 장관은 "정치인으로서 지역구를 포기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 이제 지역구(공천)에 대한 것은 당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내각의 일원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 그가 올해 9월까지 장관직을 유지하면 역대 최장수 장관 기록을 다시 세우게 된다. 김 장관의 유임은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함께한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한 뒤 임기를 무사히 마친다면 그의 정치력과 행정력은 탁월함으로 각인될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고강도 규제와 반드시 뿌리를 뽑겠다는 결연한 의지에도 시장의 집값은 미쳐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달 6일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0.07% 상승했다. 지난달 16일 0.20%를 기록한 이후 3주 연속 오름폭이 줄어든 것이다. 경기도의 아파트값도 0.14%로 전주(0.17%)보다 상승폭이 둔화됐다. 비규제지역이거나 정부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용인시 수지구(0.52%)나 수원시 영통구(0.24%)의 아파트값은 치솟았다. 특히 수원 영통의 전주 상승폭은 0.81%였다. 지난 7월 둘째 주부터 이달 첫째 주까지 27주 연속 상승세다. ‘로또 분양’에 대한 기대감에 청약 경쟁률도 비정상적으로 오르고 있고, 청약 대기수요에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18번이나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 동안 시장에서는 정부가 대책을 내놓으면 잠깐 주춤했다 다시 오른다는 학습효과도 쌓이고 있다. 정부 정책이 투기수요를 부채질한다고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정부 정책이 의지만큼 촘촘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전쟁을 선언했으니, 집값을 잡지 못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피해갈 수 없다. 정치시계는 4월 총선과 차기 대선을 향해 째깍거리며 가고 있다. 총선의 결과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들은 힘을 받을 수도 있고 힘이 빠질 수도 있다. 집은 삶의 질을 바라보는 근간이요, 집값은 가장 중요한 민생의 문제다. 정부의 거듭되는 고강도 정책이 나올 때마다 시장의 비웃음이 커진다 해도, 전쟁을 선언한 마당에 미친 집값만큼은 반드시 잡기를 바란다. 어차피 살 비웃음이라면 추가대책도 자신있게 내놓아야 한다. 문 대통령의 신년사가 허언이 되지 않는 것, 그것이 김 장관의 ‘쓰임’일 것이다.

이금미 경제부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