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아이들의 소중한 것 지켜주는 게 어른"… '뚝딱이 아빠'로 남고 싶은 방송인 김종석 씨
[Story] "아이들의 소중한 것 지켜주는 게 어른"… '뚝딱이 아빠'로 남고 싶은 방송인 김종석 씨
  • 김형욱
  • 기사입력 2020.01.14 21:38
  • 최종수정 2020.01.14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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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딩동댕 유치원’이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오랜 기간 진행해 온 방송인 김종석 씨는 ‘뚝딱이’라는 캐릭터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졌다. MBC 개그맨 출신인 그는 방송 생활 내내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각종 어린이 행사에 참여하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린이들이 실망할까 봐 자신의 나이와 사생활을 좀처럼 방송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김종석 씨. 그는 남양주시에서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고 현재 경기도의회 홍보대사를 지내며 경기도와도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김종석 씨가 운영하는 남양주시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EBS가 선보이고 있는 캐릭터 ‘펭수’ 열풍에 대한 생각과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이유에 관해 물었다.

 

방송인 김종석 씨가 지난 8일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EBS '모여라 딩동댕' 공개방송을 하고 있다. 사진=김영운기자

-최근에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EBS의 ‘모여라 딩동댕’, 그리고 가수 현숙과 경기도의회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저도 나름대로 힐링할 공간과 친구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어 팔당에 ‘벨스타 커피’를 열었다. 커피점 운영에 재미를 붙여서 커피와 음식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2014년에 문을 열었고 양수리에도 2호점을 열 예정이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1등을 못 해봐서 1등을 해 보는 게 꿈이었다. 난데없이 커피숍으로 제가 1등을 한번 해보려고 한국에서 가장 큰 커피숍을 오픈하게 됐다. 2호점은 6층까지 전 층이 커피숍이다."

-나이를 공개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20여 년 전에 뚝딱이가 탄생하면서 아빠라는 캐릭터를 맡은 이후 김종석이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뚝딱이를 보는 아이들이 6~7세 정도인데 그 아이들이 커서 30대가 됐다. 뚝딱이가 30살이 넘었다고 하면 아이들에게 실망을 줄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 나이와 가정사 2가지를 안 밝히고 있다. 내가 뚝딱이란 아이의 아빠인데 만약에 뚝딱이 아빠가 애가 셋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굉장히 상처를 받는다. 아이들은 ‘아니 저 사람이 뚝딱이 아빠인데 진짜 아이가 3명이나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지키는 것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약속을 평생 지켜온 것이다. 요즘에도 다양한 프로그램들에서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 사람들은 저 사람은 애가 몇 명이고 아동학 박사인데 아이들을 잘 키웠는지,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 어떤지 궁금해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내 나이와 가족사는 거의 틀린 내용이다. 아이들의 정서나 아이들이 나를 보는 느낌, 소중한 것들을 지켜주는 것이 어른으로서의 도리다."

-EBS의 ‘딩동댕 유치원’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은 계기는.
"MBC에서 개그맨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EBS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딩동댕유치원 MC를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방송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었다. EBS를 가게 되면 MBC에서 하던 프로그램을 다 관둬야 했다. 수입이 너무 많이 줄어 고민을 했다. 개그맨 김병조 선배에게 이 제안에 대해 물어봤다. 그랬더니 김 선배가 개그 프로그램을 했을 때 너의 성취도가 높은 거 같은지 아니면 어린이 프로그램을 했을 때 성취도가 높은 거 같은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내가 항상 치였다. 그런데 어린이 프로그램은 끝나기만 하면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잘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김 선배는 직업이라고 하는 것은 좋아서 하는 것이라 너에게 맞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하라고 조언했다. 이게 EBS의 제안에 대해 완전히 마음을 굳힌 동기가 됐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처음에는 천대받았다. 작업하기도 힘들고 시청률도 나오지 않는 데다가 외부에서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깐깐하게 해 다들 안 하려고 했다. 내가 공중파 프로그램 10개를 다 버리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해서 수입이 너무 적고 빈곤하게 살수도 있지만 나는 돌아보지는 않는다는 마음이었다. 그냥 그길로 쭉 간다고 결심했다.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그냥 대본을 읽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균관대에서 아동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박사학위 따는 데 9년이 걸렸다."

 

-‘뚝딱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뚝딱이가 탄생하기 전에는 미키마우스, 톰과 제리 등 외국 캐릭터들이 동심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가 건의를 해 전 스텝들을 모이게 해서 창의적인 우리의 캐릭터를 만들자고 해서 탄생한 게 바로 ‘뚝딱이’라는 캐릭터다. 그래서 그 친구가 탄생했는데 캐릭터가 결손 가정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 아이가 아빠가 있어야 된다고 해 뚝딱이 아빠가 탄생했다. 뚝딱이의 성공 이후 EBS에서 자신감이 붙었다. 그래서 나온 게 뿡뿡이다. 뿡뿡이가 나오자 파장효과가 상당히 컸다. 미국의 캐릭터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게 애니메이션 쪽에서 뽀로로가 나온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나라 캐릭터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나가는 계기가 됐다. 지금은 알다시피 폴리, 번개맨, 요즘에는 펭수까지 우리의 고유 캐릭터들이 굉장한 경쟁력을 갖게 됐다."

-원래 어린이를 좋아하셨나.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아이들을 좋아했었다. 아이들과 그냥 재밌게 20~30분은 논다. 자랄 때도 친구들과 하는 놀이를 좋아했다. 제 성품이 와일드하고 굵은 게 아니라 섬세하고 여린데 이런 것들이 아이들과 맞는 것 같다. 저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프로그램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한국의 어설픈 아빠들, 놀 줄 모르는 아빠들에게 이 프로그램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서다. 엄마하고 아이가 애착이 잘 되도 형성되지 않는 것이 있다. 아빠와 놀아야 형성되는 게 사회성이다. 사회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요즘은 주변에서 아이와 아빠가 같이 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충북 음성 동요학교도 만들었는데.
"3~4살짜리가 대중가요를 부르고 그걸 보고 어른들은 좋다고 한다. 대중가요의 뜻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 정서를 해치게 된다. 아이들은 성대가 약하기 때문에 라 음계로 이뤄진 동요를 가르쳐줘야 된다. 동요학교 설립을 해서 동요보급을 위해 관련된 활동을 했다."

-펭수 열풍에 대한 생각은.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운 것처럼 펭수 자체가 기존의 틀을 깬다는 점에서 굉장히 창의적이라고 본다. 나는 펭수와 같은 친구들이 오래갔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도를 해야지 우리나라 캐릭터 시장도 커진다. 늘 같은 범주에서 생활하면 지루하다. 펭수의 성향이 개방적이고 공격적이고 나서기 좋아하는 스타일인 데다가 어린이 언어에 국한되지 않고 성인까지 넘나들다 보니 20~30대한테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 캐릭터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고향이다. 펭수가 뜨면서 잊혀 가고 있는 캐릭터들도 되살아났다."

 

-유아교육이 나아갈 방향은.
"간섭을 최대한 줄여야 된다. 그래야 교육이 창의적으로 바뀐다. 중요한 건 큰 물줄기다. 글로벌 IT 시대라는 큰 물줄기가 흐르고 있는데 우리나라 교육만 정체돼 있는 느낌이다. 아이들에게 국가는 춤추는 터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놀이다. 근데 이 놀이를 할 때 철저하게 교사 개입도 서서히 줄여가면서 아이들 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려면 교사의 외적인 업무가 적어야 한다. 유치원에서도 행정 업무가 너무 많다. 교육부가 관여를 하면 업무가 많게 돼 있다. 그런 부분들이 조금만 정제되고 그 친구들이 에너지를 모을 수 있게 해서 아이들과 함께 섞여 갈 수 있는 걸 만들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송해 아저씨가 백발이 하얘질 때 까지 전국노래자랑에 나온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좋아한다. 그 이유는 송해 아저씨를 보면서 고향을 그리워할 수 있어서다. 20대 때 봤던 송해 선생님의 모습을 60대가 돼서 보면 20대를 회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한결같이 지켜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저도 마찬가지로 이야기 할아버지가 돼서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하지 못했던 일들을 계승해 가면서 살아가고 싶다."

김형욱기자

사진=김영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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