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선정, 제13회 런던 한국영화제 특별 초청, 제5회 대만 타오위안 국제영화제 Young Vibes 부문 초청에 빛나는 정형석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성혜의 나라’가 이달 중 개봉을 앞두고 있다.

특히 최근 메인 포스터와 메인 예고편 영상을 공개하면서 더욱 기대를 모은다.

영화는 어렵게 살아가는 취준생 성혜의 일상을 담아냈다. 영화 속 이야기는 우연히 보게 된 하나의 뉴스에서 시작된다. 고시원에서 한 달 만에 발견된 청년의 죽음, 그 청년은 왜 고시원에서 홀로 쓸쓸하게 죽어 갔는가. 그 청년이 죽음으로 내몰린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또한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은 어떠한지, 그들의 모습을 담는 것에서 영화는 시작됐다. 스물아홉 ‘성혜’ 또한 고단하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인턴사원으로 들어갔으나 성희롱을 당하고, 인권위원회에 신고를 해도 회사 동료 중 누구도 증언해주지 않는다.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있고, 어머니는 성혜에게 돈을 요구하지만 성혜 또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사방이 무심한 공기로 가득 차 숨쉬기 힘든 상황에도 성혜는 묵묵히 견디며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그녀 주변에 뜻밖의 사건들이 벌어지며 그 과정에서 인생의 반전을 맞이하는데,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한다. ‘당신이 성혜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엄마이자 아내의 삶을 그렸다면 ‘성혜의 나라’는 암울하고 답답한 현실 아래, 꿈도 사랑도 청춘도 떠나 보내고 희망 따위 가질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좀비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스물아홉 여자의 삶을 그리고 있다. 스물아홉은 인생에서 가장 불안한 시기이며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남성보다 어려운 게 사실이다. 성희롱을 비롯해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부분들이 그러하다. 영화는 지금 그들이 가진 고민과 삶에 대해 질문한다. 이 시대 청춘은 물론, 대한민국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다. 현재도, 미래도 대한민국은 ‘성혜의 나라’처럼 된다면 희망은 없을 것이다. 이 시대 청춘에게 필요한 건 이해와 관심이다.

영화는 흑백으로 촬영돼 관객과 영화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성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컬러인 경우 현실감이 지나치게 부각될 위험이 있다. 그에 비해 흑백은 판타지적인 느낌을 줄 수 있고, 관객이 이야기에 접근하기 수월한 면을 취한다. 즉 보고 싶지 않은 정도의 현실감은 눌러주고 두 시간 동안 관객을 붙잡으면서 이야기를 묵직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흑백으로 보여주는 ‘성혜의 얼굴’ 또한 주목할만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표정 변화가 없다. 삶에서 웃을 일도 없지만, 그가 로봇, 기계라는 함의를 담고 있다. 영화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제목이 ‘성혜의 나라’인 것도 시스템 때문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세대가 계속 돌아가야 하고, 이를테면 사람들은 기계인 셈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성혜가 기계임을 멈추고 사람으로 해방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시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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