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이 다가오면 불편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설’을 설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폐는 청산하자’, ‘일제의 잔재는 없애야 한다’면서 우리는 아직도 ‘설’을 ‘구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구정’은 엄연히 일제의 잔재이다. 부끄럽고 치욕적인 명칭이다. 일제가 빼앗은 것은 우리의 글과 말, 우리의 성과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조차도 왜곡시켜 한민족의 정신을 폄훼하고 훼손시켰다.

어떻게 ‘설’의 전통과 명칭을 되찾을 수 있었는가를 되짚어 보면 ‘구정’이라는 말이 얼마나 부끄럽고 치욕적인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설’이라는 명칭과 의미를 되찾은 것이 그리 오래지 않다. 광복이 되고도 약 45년간이나 일제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관성처럼 우리의 전통을 온전히 계승하지 못하였다.

광복이 되고 나서도 양력 1월 1일을 ‘신정’이라하여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음력 1월 1일은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의 명절이 아니었다. 명칭만으로 ‘구정’이라 하였을 뿐이었다. ‘설’을 복원시키지 못한 것은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음력 1월 1일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명절이었다. 휴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지키기 위한 다수의 국민들은 ‘설’을 기쁘게 맞이하였고 정성을 다하여 ‘설’을 쇠었다. 물론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양력으로 설을 쇠는 가정도 있었고, 일부는 오늘날에도 양력으로 설을 쇠는 가정이 있는 것으로 안다.

‘설’이 본래의 명칭을 되찾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공휴일로 지정이 되느냐 안되느냐를 떠나 명칭을 정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1985년 어색한 명칭이나마 ‘민속의 날’로 부활할 수 있었다. 명칭의 논의 과정에서도 ‘민속의 날’, ‘농민의 날’ 등이 거론되었으며 ‘설날’, ‘민속설날’ 등의 이름으로 방황하다가, 1989년 2월 1일 정부가 음력 1월 1일을 전후한 3일을 공휴일로 지정함으로써 오늘날의 설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자, 적폐를 청산하자" 주장하면서 ‘설’을 아직도 ‘구정’이라 해야 되겠는가? 기왕 얘기를 하자면 양력 1월 1일도 ‘신정’이라고 해야 하겠는가? 일본에서 와레키(和曆)를 양력으로 바꿀 때 음력설을 구정(?正)이라고 부르면서 만든 말임을 알게 된다면 더욱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리고 우리의 명절이 ‘설’인가? ‘설날’인가? 명절의 이름은 ‘설’이고 ‘설’이 되는 날이 ‘설날’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명절을 ‘설날’로 표기하고 그렇게 부르고만 있으니 안쓰럽고 부끄럽기만 하다. 말하자면 설날연휴인가? 설 연휴인가? ‘추석’은 왜 ‘추석날’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추석’이라 부르는가? 다시 확인하여 둔다. 우리의 명절은 ‘설’이고 ‘추석’인 것이다. 이를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명칭을 바로 잡아 세우는 것이 일제강점기의 치욕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는 길이다.

‘설’은 새해의 첫머리며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다. 설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날이며 첫머리다. 그래서 설이라는 말은 ‘설다’, ‘낯설다’는 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새롭게 맞이하는 새로운 해에 대한 낯설음의 속성을 가장 강하게 띠는 날이 바로 ‘설’이요 ‘설날’인 것이다. 따져 밝히자면 2020년 1월 1일은 경자년이 아니다. 음력 1월 1일인 2020년 1월 25일을 기하여 온전한 경자(庚子)년이 밝아오고 있다. 낯설은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낯설은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과 설레임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그 복 두루 나누시는 ‘설’명절과 연휴되시기를 기원한다.

김용국 아시아문화연구원 원장,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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