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 연행이란 조선과 중국 청나라가 교류하던 18세기 당시 연경 즉 북경에 사신들이 교류를 위해 사행을 했던 것을 ‘연행’이라 부르며 이들이 지났던 길들을 ‘연행노정’이라고 부른다.

당시 국가와 국가간의 교류가 어떻게 이뤄졌으며, 우리나라 사신들의 눈에 비치는 중국은 어땠는지가 이 연행을 기록한 ‘연행록(연행일기)’에 담겨있다.

하지만 이들이 지났던 길 ‘연행노정’이 제대로 기록되지 못하고 있다. 일단 그 공간이 중국에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급속도로 발전하는 중국에 반비례해 역사적 기록들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에 이 연행노정을 20년간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한사람이 있다. 바로 신춘호(51) 방송대학 TV 촬영감독이다.

 

- 본인 소개를 해달라
"소속은 방송대학TV 촬영감독이다. 방송프로그램 제작을 하면서 TV다큐멘터리와 교육콘텐츠 제작도 맡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조선시대 사신이 지났던 ‘연행 노정’에 대한 연구를 20년간 해오고 있다. 그러면서 문화콘텐츠 박사학위로 취득하고 지난 2010년에는 연행노정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열하일기, 길위의 향연’을 제작하기도 했다. 지금은 연행 뿐 아니라 일본으로 파견된 조선 통신사, 표해록(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면서 겪은 체험과 여정들을 기록한 기행록)에 대한 기록도 하고 있다."

- 연행노정이란 것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설명하면 외교 사절들이 지나갔던 길이다. 고려말에서 조선시대 당시 외교 사절을 중국으로 보냈다. 그 사절들이 중국을 오고갔던 길은 말 그대로 국가간의 외교 통로다. 이 외교관들이 지나면서 문화를 교류했던 의미가 있다. 이들은 이동만 한것이 아니라 이동하면서 중국의 다양한 풍습을 기록하고 남겼던 것이다. 길은 사람이나 교통의 이동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호가 소통하는 공간이다. 그것 자체가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이 길을 나는 문화로드라고 부른다."

- 연행노정에 관심을 가지게된 계기는?
"원래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원래 중문과를 나와서 중국에도 관심이 많았고 동시에 영상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20년 전 2000년이 되면서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는 기획프로그램이 많았는데, 이에 올라탄 것이다. 내가 올라탄 프로그램은 최초의 인터넷 서점이 진행했던 여행 기획안 공모다. 각 대륙별로 한팀씩 선발해 여행을 보내주는 내용이었는데, 내가 그때 냈던 내용이 연암 박지원과 연해노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공모전 당시 기획에 내 특기를 살려 영상으로 연행노정을 기록해오겠다고 썼는데, 그 공모에 당선이 됐다. 이후 약 4년간 비슷한 공모를 석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연행노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영상으로 그 노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 당시 관련 연구의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행에 대한 많은 기록들을 읽고 접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이 연행노정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것 같다."

- 글이 아니라 영상으로 기록하는 이유가 있나?
"초기에는 사진과 글로 기록 했다. 물론 영상도 찍었다. 현장 답사를 하면서 영상기록의 필요성을 알게 됐다. 중국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이 연행노정의 기록들이 사라지거나 훼손, 멸실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됐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20년간 연행노정을 연구하면서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현장답사를 하거나 기록을 해석하는 데는 신경을 많이쓰지만 정작 이 역사 공간을 영상으로 남기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을 느꼈다. 이는 한·중 양쪽에 해당한다. 2015년 심양에서 한국 연행연구자와 중국연행연구자 50여명이 모여서 학술대회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에 내가 마지막에 ‘중국에서 연행노정의 공간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는가’에 대해 물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바로 내가 그 영상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사공간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은 다양한 측면으로 쓰임이 있을 것이다."

- 영상 기록을 위해 답사도 많이 갔을것 같다. 연구 진척은 얼마나 됐나?
"2000년 이후 한해 3~4회가량 갔다. 열하일기, 해로노정, 통신사 노정 등 사행노정 답사만 30여회 갔다 왔다. 길게는 15일에서 짧게는 8일가량 갔다왔다. 연구와 기록을 시작한지 7년째인 지난 2007년에야 연행노정의 전체노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를 연행노정 기록사진전을 통해 학계와 대중에 소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이뤄진 연행노정 영상기록 전시였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정밀 답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문헌기록을 참고해 현지 지명을 파악하고 고지도, 근세지도, GPS를 활용해 공간과 공간을 잇고 있다."

- 힘든일은 없었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간내는 것이 꽤 힘들었다. 또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일이다보니 경비 충당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카드 할부를 많이 긁기도 했다. 12개월 할부를 하고 갔다와서 다시 일년뒤 또 12개월 할부를 하는 식이다. 그래도 내가 기록한 이 영상과 기록물들이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될 것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 앞으로의 연구 방향은 어떻게 되나?
"연행노정 연구와 더불어 가까운 목표로 근대 사신단의 노정까지 연구할 계획이다. 중국지역으로는 우리 사신들이 공식적으로 1895년까지 갔었다. 그이후에는 단절이 됐다. 대한제국으로 들어가면서 외교사절이 서구 유럽으로 파견되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외교 사절의 초기 형태다. 현대로 들어오기 전 근대의 외교사절의 행적을 연구하다보니 유럽, 미주 등에 파견된 행적들에 관심이 많다. 특히 몇해전 진행했던 유라시아 횡단을 통해 유럽지역에 파견된 민영환의 러시아 파견답사를 하게 되면서 행적조사를 시급히 해야할 팔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민영환이 잠시 머물렀던 프레데릭 역, 호텔 등이다. 이곳을 거쳤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많이 모른다. 영상기록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가보면 100년 전과는 많은것이 변했다. 또 연행노정에 대한 기록을 계속하면서 통신사와 표해록 노정도 같이 해왔다. 이 연구도 지속할 예정이다. 좀더 멀리보자면 영상 아카이브를 구축해서 연행과 관련된 아카이브 영상을 구축해 일반대중들이 우리 역사 현장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인터넷 구축도 방법이지만 사실 별도의 공간을 만드는것이 가장 좋다. 20년간 해온 필름 작업과 CD, 디지털 등 저장매체가 다양해 지는 과정에서 계속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서적을 같이 진열하고 대중들이 찾는 작은 자료관을 만드는것이 목표다."

- 꽤 다양한 방법으로 영상이 쓰여질것 같다
"물론이다 영상 디지털의 특징은 확장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확장성은 문화 콘텐츠의 힘이기도 하다. 인물, 사건, 배경을 기반으로 하는 문학, 역사학 등 인문학의 많은 소재들이 디지털 기술과 연계해 새로운 콘텐츠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원소시 멀티유즈나 다양한 디바이스 활용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연행노정의 영상 기록물도 활용성이 당양할 것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사진자료는 전시, 도록, 출판과 같은 단일콘텐츠에만 활용돼 있었지만 이제는 확장이 가능한 시대다. 지난 20년간 현장답사를 통해 기록한 영상자료들을 공적인 영역에서 활용하는 것이 고민이다."
 

- 끝으로 할말은?
"역사가 갑자기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나라가 가진 해외의 흔적들을 놓쳐서는 안된다. 다른 연구자들은 글로서 남기는 역사연구를 하지만, 나는 영상을 남기는것기 기본이라 생각한다. 나름대로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남북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 지면 머지않아 한양에서 의주까지의 노정도 답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있다. 진짜 노정은 한양에서 의주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는 길이다. 이를 완성하기까지 계속 노력하겠다. 오늘은 내일의 역사다. 나는 현재를 통해 역사를 남겨 후세에서도 볼수 있는 기록을 앞으로도 해 나가겠다"

백창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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