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락 작품의 화두는 ‘징검다리’이다.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이면서 완전한 연결이 아닌 항상 위험성이 따르는 불안전한 연결체. 그 연결고리가 2018년 전자회로로 바뀌더니, 이번 작품에는 토르소가 간간이 보인다. 작가가 직접 제작한 토르소의 거친 손맛이 더해져서 인간 내면의 갈등과 상실감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인간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습성과 억압된 상실감에서 벗어나려는 습성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오간다. 나는 이러한 인간 내면의 갈등과 상실감의 흔적을 화면의 인물을 통해 표현하려 한다.’라고 말하는 최경락의 작품세계는 예측 불허다. 어정쩡한 인물의 표정과 손짓, 사이보그(cybprg)화된 인체의 형상들. 그 형상들을 형성하고 있는 수십 층의 레이어. 그 층들을 헤집고 들어가 보면, 우리는 작가 특유의 섬세한 촉각의 세상을 만나게 된다. 한국화를 전공한 최경락이 회화, 애니메이션, 서예, 조소, 도자, 만화 등 다양한 작업을 거치면서 누적된 층들이다. 그 층들은 서로 어슷하게 겹치거나 드러나면서 화면은 풍성하고 단단해졌다.

 
징검다리 #2019, 122x84cm, 한지 위에 먹 & 토르소, 전자회로, 2019

작가가 오랫동안 작업하던 먹은 이번 작업에도 사용했다. 전자회로의 금속성이 드러나는 색채들과 불 맛 나는 토르소, 검은 먹빛이 섞이면서 묘한 느낌이다. 먹의 공간은 점에서 선으로, 선은 다시 전자회로로 바뀌고, 사이보그(cyborg)화 된 인체의 형상이 툭툭 올라가 있다. 붓이 머물다 지나간 곳은 원근의 일루전을 만들고, 이쪽과 저쪽 사이를 가르는 개념의 막들은 작가의 손맛으로 마무리되었다. 인간 내면의 갈등과 상실감의 흔적을 능숙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그가 한 가지 재료나 기법에 머무르지 않고, 작업 형식에도 메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랜 기간 작가의 작업을 보아온 탓에 궁금증이 더하다는 물음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답한다. 노자의 정신세계를 추구하고 갈망하는, 작가의 작업과 삶이 모두 담겨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물 흐르듯 인생을 살아내고, 그가 자신의 작품을 세상 뒤에 두는 것도 같은 맥락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과 타협하는 작품은 하지 않는다는 최경락의 작업은 영혼을 움직이는 끌림이 있다. 자신의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마음에 존재하는 진리를 캔버스에 쏟아내는 그의 작업은 육감을 넘은 감각을 최대한 발휘한 작품세계인 것이다.

최경자 화가, 문화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