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한 남자의 무참히 무너지는 생을 다룬 이문열의 소설 제목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대종상 7개 부문을 수상하고 한국영화 침체기였던 당시로서는 꽤 많은 관객을 동원한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소설은 잘나가던 남자가 한 여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 때문에 균형감을 잃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는 심리상태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최근 정부·여당의 여러 행태들을 보면서 이 소설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주인공처럼 정말 잘 나갔던 엄청난 지지를 받고 출범했던 촛불정권이라는 점도 그렇고, 개혁이나 적폐청산에 강하게 집착하는 것 역시 사랑과 연민에 모든 것을 걸었던 주인공을 연상케 하기 때문 아닐까. 통일이라는 이상에 매몰되어 경제, 외교 등 모든 정책들이 난관에 봉착한 것도 필자에게는 주인공 행태와 겹쳐 보인다.

무엇보다 추락하면서 심리적 균형상태가 붕괴되고 있는 모습이다. 자신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자기 탓이 아니라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는 ‘외부귀인’ 혹은 ‘자기방어귀인(self-protection attribution)’ 증세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검찰개혁 저지, 수구세력 저항 같은 변명들을 내놓는 횟수나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아마 대다수 국민들은 개혁과 적폐청산 자체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를 추진하는 과정과 절차상의 부작용들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고, 개혁과 적폐청산이 정권을 위한 것인지 국가를 위한 것인지 혼란스럽기 때문에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런 비판들이 반개혁적 부패세력들의 저항으로 규정하고 더 원색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심지어 집값 폭등이 소수 투기꾼들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집을 사고파는 것까지 적폐로 몰고 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4월에 있을 총선거를 ‘야당심판’이라는 용어로 공격하고 있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비판 목소리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 하는 것 같다. 집권 초기부터 주요 방송사들을 노조가 장악한 정권홍보 노영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재허가·재승인 같은 간접적 방법으로 언론사들을 압박하는 모습이다. 또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이 커질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 가짜뉴스는 개념정의마저 바꾸어야 할 판이다. 허위사실을 사실인 것처럼 유포하는 조작된 뉴스가 아니라 정부를 비판하는 뉴스로 말이다. 보수성향 정치 유튜버를 방송처럼 규제하겠다는 의지는 방송통신위원회 수장까지 하차시키면서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급기야 정권을 비판하고 찍어주지 말자는 교수의 신문 칼럼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민들의 엄청난 비난 때문에 하루도 못되어 취하했지만 현 정권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얼마나 듣기 싫어하는지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정말 잘하라는 내부의 쓴 지적조차 듣기를 거부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처럼 자기방어귀인이나 확증편향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면 그건 병리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어쩌면 서서히 추락해갔던 소설 주인공과 같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 것이 아닌가 싶다.

촛불로 집권한 민주화 세력임을 자부했던 그 세대가 집권 이후 이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마치 사랑과 연민에 집착했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지나친 자기 확신이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수준을 넘어 무오류의 절대 권력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 것은 아닌가 싶다. 비판과 이를 수용하는 논의과정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절대 필요조건이다. 그래야 다수의 선택을 받은 권력이 독선에 빠지지 않고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 정권은 비판을 부정하는 독선을 넘어 자신을 지지하는 소리만 듣고 싶어하는 독재 초입단계에 들어선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소설은 여주인공을 살해하는 비극으로 끝난다. 자신을 추락하게 만든 사랑과 연민의 대상을 제거해야만 추락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을 주인공은 그때야 알았던 것 같다. 아직 추락단계는 아니지만 추락의 조짐이 보이는 정권이 날개를 펴고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행위들만 옳다고 생각하는 아집부터 버려야만 할 것이다. 그것만이 정권도 국가도 그리고 민주주의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황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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