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혹시 기억하세요. 지금은 병상에 누워 계셔 추억도 희미하겠지만….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 어머니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갔던 우리 동네 최고의 관광지 송도유원지말예요. 아마도 올림픽의 해인 1988년도였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던 그 시절. 달랑 김밥 한 줄, 삶은 계란 3개에 사이다 한 병 싸서 바닷가 모래사장을 거닐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송도유원지는 그야말로 삭막한 도심 속 인천의 유일한 낙원이었죠. 작열하는 태양이 내리쬐는 바닷가 한가운데 나룻배를 타고 낭만을 즐기는 이웃 아재들. 대학생 형들은 통기타 하나들고 무수히 쏟아지는 별의 노래에 입을 맞췄죠. 때로는 아이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어른흉내를 내며 낭만을 즐겼던 그 시절. 못난이 삼형제 우스꽝스러운 인형처럼 백사장을 뛰놀며 울고 웃던 그 시절. 옆구리 터진 김밥도 궁둥이 터진 계란도 사이다 트림 한 번이면 마냥 행복했던 그 시절. 찢어진 텐트에서 퉁퉁 불은 라면 끓여먹어도 마냥 사랑스러웠던 그 시절. 붉게 타오르는 저녁놀 바라보며 이문세 형님의 ‘붉은 노을’을 떼창했던 아름다웠던 그 시절.

송도유원지는 그 자체로 사랑이고 연인이고 가족이고 이웃이었죠. 그렇게 마냥 순박하고 유치한 순수를 꿈꾸던 그곳이 어느새 추억 속에서 사라졌어요. 1937년 일본인들의 최대 관광명소였던 그곳이. 1961년 국가관광지로 변모해 1980년대는 급기야 전국 최고의 휴양지를 자랑했던 그곳이 말이죠.

시대의 변화 속에 가뭇가뭇 사라진 송도유원지의 수많은 추억을 과연 누가 빼앗아 갔을까요. 인천시는 2008년 연수구의 역사성과 도시균형을 고려해 관광단지로 지정했죠. 그러나 이후 토지소유주와 투자자, 인천시의 불협화음 등으로 결국 2011년 전면 폐장하기에 이르렀죠. 2012년 일부 토지소유주와 주상복합개발계획 협상을 전개했지만 그 역시 실패했죠. 2013년 갑자기 중고차매매업자들이 대거 입주하면서 유원지의 흔적과 그림자마저 완전히 사라졌어요.

2018년 연수구청이 중고차 인근단지 송도석산 부지와 함께 송도유원지를 다시 부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죠. 당시 구 입장에선 송도유원지를 복원시켜 구도심 주민편의시설 확충과 관광 활성화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봤죠. 물론 토지소유주의 입장은 달랐고 일부는 공동주택과 도시개발사업 등 상업시설을 통한 개발이익을 원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죠.

그럼 2020년 최근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인천시에 따르면 오는 7월 1일부로 송도유원지 공원 기능이 자동 폐지돼 새로운 도시계획 입안을 구성중이라네요. 즉 유원지로 지정된 도시계획시설 200만㎡ 가운데 25%가 일몰제에 따라 자연 해제돼 재산권 제한이 사라져요. 이에 따라 토지주와 민간개발업자 간 난개발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요. 이밖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송도유원지 복원이 요원한 실정이랍니다.

어머니, 그래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예전 우리 가족이, 이웃들이, 친구들이, 연인들이 송도유원지에서 마냥 행복하게 뛰놀던 그 빛나는 백사장을 꼭 되찾을 거라는 확신 말이죠. 물론 시대가 많이 발전돼 옛날의 금잔디 같은 수수했던 추억은 아니겠지만. 다시 처음의 설렘으로 돌아가 첫사랑을 만나듯 그렇게 우리 송도유원지가 다시 시민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그리하여 우리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무대를 휩쓸었듯 송도유원지가 세계 속의 생태공원으로 우뚝 서는 그날을 그려봅니다. 그런 아름다운 시절이 다시 돌아오면, 저는 어머님을 등에 업고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모래언덕을 뛰어오를 겁니다. 어머니, 곧 그날이 돌아오리라는 믿음으로 빨리 일어나시고 만수무강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인천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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