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도다. 나는 장량(張良)처럼 탁월한 책략(策略)을 쓸 줄 모른다. 소하(蕭何)처럼 업무를 총괄하고 군비와 군량을 때에 맞춰 보급할 줄도 모른다. 또 한신(韓信)처럼 군사를 통솔하여 싸워 이길 줄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세 사람을 제대로 기용할 줄 아는데, 초나라 항우(項羽)는 범증이라는 지략가가 있음에도 제대로 기용하지 못했다. 이것이 내가 천하를 잡은 이유다."

중국을 통일한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B.C 247?~B.C 195)의 말입니다.

진(秦)나라 시황제가 죽은 다음 진시황의 학정에 고통받던 백성들이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전국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난 농민 반란의 선두에는 항우와 유방이 있었습니다. 이들에 의해 진나라는 망하고 항우와 유방의 세력다툼에 유방이 승리하고 유방은 한나라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한나라 건국에 큰 공로 세운 이가 한신(B.C?~B.C 196) 장군입니다.

한신은 해하(垓下)에서 항우를 격파하고 주변의 위나라, 조나라, 제나라 등을 정복하였고 한(漢) 나라의 병권(兵權)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유방이 한나라 황제가 되자 한신을 견제하기 위해 한신이 반란의 기미가 있다고 하여 책봉되었던 초왕(楚王)의 지위와 군사 지휘권을 박탈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신의 고향인 회음(淮陰)의 제후로 좌천(左遷)을 시켰다고 사기 회음후전(淮陰侯傳)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좌천이란 말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벼슬 즉 관직의 자리가 누리고 있던 자리에서 그만 못하거나 낮은 자리로 옮겨지는 것을 좌천이라고 하는데 이는 신체의 부위에서 오른쪽을 더 중시했던 의식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습니다.

동쪽을 바라보고 서 있을 때 북쪽을 향한 부위가 좌측이고 남쪽을 향한 부위가 우측 즉, 오른쪽이라 하겠습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R.에르츠’는 오른손잡이 우월의 사회적 규제를 성(聖)과 속(俗) 또는 정(正)과 부정(不正)이라는 종교적 이원론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오른쪽은 선(善)이고 정(正)이며, 왼쪽은 악(惡)이며 부정(不正)이라고 가치를 부여하는 종교문화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등의 여러 종족(種族)에서는 극단적 양분법으로 오른손과 왼손의 가치를 다르게 부여하여 음식을 먹을 때는 오른손을 사용하고 오물 등 배설물 등은 왼손을 사용하며 오른 팔에는 선한 정령(精靈)이, 왼팔에는 나쁜 정령이 있다는 의식이 고착되어 있기도 합니다.

기독교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 오른쪽의 가치를 우위에 두고 있습니다.

심지어 오른손을 ‘바른 손’이라고 할 정도로 ‘우측’을 높이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오른쪽과 왼쪽의 가치가 좀 다르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벼슬의 품계에서는 영의정 다음 좌의정이었습니다.

좌의정은 백관(百官)을 통솔하고 정무와 외교관계 등의 업무를 보던 직책으로 우의정 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관습에서는 오른쪽 우위의 의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높은 벼슬자리로 옮겨지는 것은 우천(右遷)이라고 했고, 낮은 벼슬자리로 옮겨지는 것은 좌천(左遷)이라고 했습니다.

벼슬길에 있는 사람은 앉은 자리에 따라 주어진 권력행사의 범위가 다르므로 인사이동철이 되면 어느 자리로 옮겨지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직무 능력의 객관적 평가와 관계없이 인사권자의 전횡으로 입맛에 맞고 말 잘 듣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어하여, 사회의 지탄받는 사람도 우천(右遷)시키는 반면, 소신과 신념과 능력이 탁월한 이를 상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좌천시키는 일도 있습니다.

좌천된 이들 중 좌천되면 관직을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좌천되어가는 자리에서 오히려 소임을 다해서 빛을 발하는 이도 있습니다.

좌천인 경우 같은 직급으로 옮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강등(降等)의 경우까지 있습니다.

우리나라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 즉 지금으로는 해군참모총장에 있던 분이 하루아침에 백의종군(白衣從軍) 즉, 무등병으로 강등되었음에도 권율장군 밑에서 소임을 다했고 그의 우국충정이 빛을 발하여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가 되어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좌천당할 때는 마음이 섭섭하고 억울하겠지만 언젠가는 소신과 사명감과 충정이 드러나 역사가 그를 기억해주는 이들도 많습니다.

 

유화웅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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