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1348년 피렌체에 페스트가 유행했다. 그야말로 지금처럼 속수무책. 도시는 아비규환의 황폐, 그것으로 부자들은 술을 퍼마시며 조금이라도 공포를 잊으려 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두문불출로 모두와의 접촉을 피해 일거리를 놓았다. 또 어떤 사람은 집과 재산을 버리고 자신들의 별장과 심지어는 남의 별장을 찾아 다녔다. 목적은 단 하나 목숨을 연명함이다. 이러한 혼란 속 일곱명의 숙녀와 세 명의 청년이 전염병을 피해 피렌체 교외의 별장으로 향한다. 그들은 주제를 정하고 저녁 식사 후에는 노래를 부르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른바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

지금 코로나로 지친 우리의 사정도 복원의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긴 마찬가지. 세 명의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주말 저녁 김 사장 별장이 있는 도내 모처에 모였다. 저마다의 불만토로와 약간의 안부를 묻기 위함이다. 나름 혼란스런 답답함에 소주 몇 병과 어울리지 않을 편의점 안주 몇 개를 별장 주인인 중소기업 김 사장이 준비했고 여행사를 하는 원 사장과 특별한 직업 없이 ‘생활정치인’이라 불리는 금 사장은 참석에 의미를 둔 듯 하다.



김 사장: "답답들 하시지. 술이나 한잔 하고 갑시다. 정치나 경제, 언제는 우리 뜻대로 됐나요. 그나저나 이제 아흐레나 남았네요. 어떻게들 찍을거요. 난 참 안철수, 저렇게 뛰어 다니는 안타까운 사진만 보면 안돼 보여 찍어 줄라고. (일동 웃음) 누구를 찍으면 나아지겠어요. 참 안철수도 뭣하러 정치를 한다고. 가만히 사업이나 하다가 서울시장 하면 서 기회를 봤어야지 쯧. 황교안 봐요. 저 사람도 공무원이나 한 통밥 이 죄다 나오잖아요. 저래가지고 너구리같은 이낙연이를 어떻게 이겨 요.통합당 대표라는 사람이 던지는 경제 메시지가 저렇게 단조 로워서야 원. 하다 안되면 대통령 잘못이라는 말이나 해대구 말이야."

원 사장: "우리 여행사는 일찍이 돈 다 돌려주고 사무실 친구들도 집에 가 얘 나 보라고 한지 일주일이 넘었어요. 오래 갈 것 같아요. 이러다가 다 죽지 다 죽어...김 사장 말이 맞긴 해요 오죽하면 진중권이가 황 대표 에게 메시지를 잘못 내고 있다는 소릴 다 할까. 통합당, 아니 보수에 머리 있는 애들이 너무 없어요. 나이든 김종인 감각이 더 나아 보일 정도니 원...‘코로나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 라는 말도 그 래요 그런데 김종인은 왜 이편저편에서 오락가락하는 거에요. 정부가 무슨 대책이라고 계속발표해도 혜택을 봤다는 사람은 없다는게 문제 야. 더구나 코로나 잘 막고 있다고 지금 정부가 자화자찬 할 때가 아 닌데. 안 그래요. 솔직히 누가 막고 있나요. 일선 의료진이나 택배가 다 틀어 막고 있잖아요. 생색은 지들이 내고. 근데 그간 야당 복 누리던 때는 다 지난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네요. 그간 정부의 ‘소주성’ 실패 로 기저질환 앓는다는데 죄다 동의하는 분위기도 그렇고 그러고 보면 위기는 늘 다른 얼굴로 찾아오는 것 같지요. 당장은 돈 퍼붓기로 발작은 가라앉았다지만 앞으로 기업과 가계대출 부실은 막을 수 있나 몰라 요...사태가 더 장기화하면 어떤 재앙이 닥 칠지 누구도 모른다는게 더 큰 문제 같아요. 뇌관은 우리 같은 중소기업 줄도산과 다가 올 부동 산 폭락에도 있을 것 같은데.

김 사장: 자칫 은행들이 기업대출이나 가계대출로 부실화되면 그 담에는 시스 템이 흔들리고 참 생각하기도 그렇네. 대형 쓰나미 오면 배의 복원력 부터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야. 우리 같은 하청업체처럼 이제 나이든 사람들 다 떠나면 경쟁력을 어찌 할 지도 문제야. 3년간 소득 주도 성장 얘기로 지새운 시간들만 아까워. 얼마 전 이헌재기 말했잖 아 지금 한국 경제가 코로나로 죽어 나가는 기저 질환자라며. 경제가 부서졌고 자영업자가 회생 불능 수준이라는 말인데...

금 씨: 최저임금 과속 인상, 주 52시간제, 탈원전 등의 잘못된 정책부터 바로 잡을 필요 있는데 희한하게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건 뭔지 모르 겠네. 난 이번 기회로 마치 과거 큰 전염병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 것처럼 원격진료나 수업같은 그야말로 4차산업이 정착할 것으로 봐 요. 어쩌면 지금 정부가 하고 싶은 것을 대신 코로나가 만들어 준 셈 일 수도. 직업군이나 여러 형태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 년이 갈지 얼마가 갈지 그 면역도 없다는 얘기로 봐서는 더 그래요. 과거 전염병 결과로 노동력 감소를 벌충하려고 설비 투자를 급히 늘린 덕에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글로벌 산업 패권국이 된 것처럼 말이에요.


얘기는 밤을 패서 계속됐지만 돌고 돌았다. 알다시피 패스트가 유럽 인구의 절반을 쓰러뜨려도 당시 학자들은 고작 별자리가 물병자리의 40도 방향에 한 줄로 섰을 때 발생했다는 말로 대신하며 손사례를 쳤다. 모두가 당장이나 앞일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앙은 페스트균을 품은 벼룩에서 비롯됐고 벼룩을 업은 쥐들이 유럽 항구에 퍼 나른데 있었다는 간단한 사실을 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기에 사람 이동을 막지 않은 데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 사정이라는데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갈아봤자 별수 없다’ 는 선거 슬로건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지금이다. 결국 모든 입방아가 별 수 없어 15일 늦은 저녁만 기다리고 있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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