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주만 더!’ 고강도 사회적 거리를 두면 곧 진정세로 접어들 거라고 기대하였지만,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위기감이 다시 조성되고 있다. 사태가 이쯤 되니 인류가 전쟁과 기아와 질병을 정복하였고, 이제 신이 되려 할 것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의 예언은 크게 빗나간 것 같다. 바이러스 하나로 인해 지구 전체가 움직임을 멈추었고, 탈출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한편 ‘코로나 역설’이라고 하여, 코로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인간 때문에 피폐해진 지구가 코로나라는 ‘백신’으로 인해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는가 하면,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으로 말썽을 일으키던 신천지의 실체가 드러나는 기회가 되었다고도 하고,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의료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다른 나라에서, 특히 빌 게이츠까지 나서서 코로나19에 대한 한국의 감염 대응 능력을 칭찬하는 것은, 국민의 높은 공동체적 시민의식과 희생 어린 협조 덕분일 것이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서는 생각도 못 한 한국인 특유의 합심 능력과 미담 창출 능력이 세계의 뭇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주목받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와 각자의 가슴 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지만, 많은 생각거리도 던져주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편리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에 따라 요구되는 삶의 방식을 준비하는 것에는 여전히 미비했음을 적나라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그렇게 코로나는 우리가 사회적 거리를 두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동안 얼마나 무분별하게 활동했고 지켜야 할 거리를 무시하며 살아왔는지 반성하게 하고 있다.

인류를 괴롭혀 온 수많은 불행과 시련은 역설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진지한 물음을 던지도록 하며, 쇄신하고 변모하도록 하였다. 코로나19 역시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취한 ‘사회적 거리’는 단순한 물리적 거리만이 아니라 인간 삶에서 필요한 거리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에게는 살아가면서 넘지 말아야 할 ‘선’과 지켜야 할 ‘거리’가 존재한다. 그 선과 거리를 지키지 않을 때 인간 삶은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게 됨을 인류의 긴 역사는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먼저 인간이 움직임을 멈추자 지구가 되살아났다는 역설은 그동안 인간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자연을 착취하고 자연의 자리를 침범해 왔는지를 반증해주는 말이다. 원전사고나 바이러스 감염증 등을 통해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을 때 인류에게 닥칠 수 있는 재앙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도 말이다.

또한 코로나19가 요구하는 사회적 거리는 인간 사이에 필요한 거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인간 삶에는 서로 간 지켜야 할 거리가 존재한다. 물리적 거리만이 아니라 자유롭고 인격적인 존재로서 갖는 존엄성과 관련된 거리다. 그 존엄성을 무시하고 너무 가까이 타인에게 다가가면, 자기도 모르게 상대의 자유를 침범하며 인격에 상처를 주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각자 안에 존중받아야 할 정체성과 삶의 영역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 이번 감염병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우리 안의 공감하는 능력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감염병으로 인해 드러난 우리 주위의 약자, 돌봄과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었는가!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겪어야 하는 불편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 절망과 좌절에 빠진 이들, 병중에 있는 이들, 생을 달리 한 이들을 기억하고, 함께 아픔을 나누며,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 말은 ‘혐오하지 말자!’일 것이다. 타인은 나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나를 이 시련에서 벗어나도록 도우며 함께 길을 걷고 있는 동행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혐오나 증오가 아니라 적절한 거리다. 그 거리는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서로 존중하게 하며 진정한 인격적 관계를 가능케 한다. 지금의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이 그 ‘거리 두기의 미학’을 배우며, 서로 더 깊은 우정과 연대로 나아갈 수 있는, 이를 통해 우리 삶을 ‘지금 여기서’부터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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