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니 비로소 보여서일까.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과 밑그림을 다루는 언론 프로그램도 늘고 있다. 이 유행은 개인이 속한 기관과 기업들, 정당과 노동조합, 직능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등을 비롯한 지역 커뮤니티로 빠르게 번져 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지자체는 재난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과 재유행을 대비하는 준비와 함께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관성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공동체의 요구를 어떻게 조정할지 오랫동안 숙의와 공론을 정책적으로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글은 코로나19에 대한 실시간 보도와 기사들, 각종 언론의 취재와 보도 방향과 행태들을 비판적으로 다룬 미디어 비평과 코로나19 ‘이후 사회’에 대한 전문가와 석학들의 릴레이 인터뷰 기사들과 칼럼, 기고 글들을 탐독한 일종의 후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정말 세상이 멈추기 전에는 몰랐을까. 멀게는 1918년 스페인 독감과 가깝게는 사스, 메르스 사태를 불과 5년 전까지 겪으면서, 이제는 논란마저 사라진 기후위기의 과학적 근거들은 차고 넘치는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약은 ‘자발적 이행’에서 ‘강제 이행’으로 점점 각 나라를 압박하는데도, 언젠가는 지구적 재난이 닥쳐올 거라고, 그것이 대유행하는 감염병이든 기후위기로 인한 인류 생존의 위기이든, 위기가 일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정말 몰랐을까.

도시화가 거주 가능한 모든 자연공간을 소모하고, 그 과정이 다시 기후위기를 증폭함으로써 양질의 농토와 숲과 습지가 사라지고 황폐화 돼 70억 인구를 안정적으로 먹일 식량과 깨끗한 물을 충분히 생산할 수 없다면,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기후로 사막화와 황폐화가 가속화된다면, 자연 상태의 알려지지 않은 세균과 바이러스가 더욱 자주 창궐하고 질병이 대유행한다면, 초연결사회와 세계의 분업체계가 곳곳에서 붕괴를 일으키며 한정적인 자원을 놓고 갈등과 분쟁이 증가하리란 것은 합리적 추론 아닌가. 개개인은 어렵더라도 현대의 발전된 과학기술과 민주사회의 집단지성과 정치적 역량이라면 각종 위험 신호를 허투루 흘리지 않고 재난을 대비할 기회는 있지 않았을까. 다만 문제를 아는 것과 실제로 대책들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하다. 그나마 준비가 됐기 때문에 이 정도 선에서 방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사태가 1918년에 발생했다고 상상해보라? 세계대전 중이라면, 깨끗한 물과 식량과 에너지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지 않고, 공공보건의료 시스템과 도시의 각종 더러움을 처리하는 하수처리와 청소시스템도 형편없다면, 재난 극복에 필요한 물품을 생산할 제조시설도 충분하지 않고 도시와 나라 간의 협력과 공조도 어렵고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어떤 인간의 노동과 존엄성이 소중하게 고려되겠는가! 지금 마스크가 문제겠는가!

‘도시화’는 절대적인 ‘나쁨’일까. 우리는 이렇게 도시에 사는데? 그래서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새로운 사회를 위한 ‘인지 혁명’과 ‘정의로운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70억 지구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화 된 공간에 과밀하게 거주하고 나머지 인구도 자원분배를 도시화된 시스템에 의존한다. 자원의 무제한 공급을 전제로 한 대량 생산과 소비와 폐기 시스템이, 인간의 노동과 존엄성, 토지와 자연, 화폐라는 사회적 약속까지 상품화하는 지구적 자본주의가, 개인과 공동체의 모든 일상을 장악한 관성의 속도와 무게가,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인지 능력을 압도한다. 그래서 문제를 아는 것과 변화를 실행하는 역량 간의 괴리가 크다. 근본적인 질문들이 사라져버린 사회에서 설사 몇몇 뛰어난 개인과 집단들이 재난의 징후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위험 신호를 보낸다 한들, 성장의 속도와 규모에 중독된 몸이 이를 알아차리고 빠르게 원인을 제거하고 새로운 사회로 전환하는 합리적 루트를 따를까? 허망한 기대일 수 있다. 그래서 코로나19, 라는 큰 충격은 붕괴 이전의 인간에게 마지막 백신인지도 모른다. 다양한 사회의 주체를 대변하는 ‘정당 정치’가 필요하고 시민사회의 공론장이 필요한 이유이다.

윤은상 수원시민햇빛발전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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