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공감능력도 뛰어나다. 다행히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았다. 수원에서 환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는 오현영(39) 마음똑똑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이야기다.

막연히 의대에 진학한 오 원장은 우연히 정신건강의학에 빠져들었다. 대학 수업 중 의사가 거식증을 겪고 있는 어린 학생과 오랫동안 교감하고 상담하며 치료한 사례가 그를 정신건강의학으로 이끌었다.

하루에도 환자 여러 명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그이기에 지칠 법도 하지만 오 원장은 오히려 환자에게 힘을 얻는다고 웃어보인다. 어려움을 안고 자신을 찾은 환자들이 조금씩 나아져 건강해지는 모습을 볼 때 성취감을 느낀다.

본인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운동을 하고 영화를 보며 가끔 ‘이불킥’도 한다는 오 원장. 정신건강 관리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를 찾았다.
 

-‘마음똑똑 정신건강의학과’는 어떤 곳인가요.
"닫혀있는 환자 마음에 노크(knock)를 하겠다는 의미로 문을 연 공간이다. 병원 이름을 짓는 데 고민이 많았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높다 보니 병원 방문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이 많다. 누구나 마음이 아플 때 들릴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마음, 닫혀있는 마음을 두드려 열고 싶다는 마음 등을 모아 마음똑똑 정신건강의학과를 열었다. 저희 병원을 찾는 분은 대부분 주민들이다. 소개를 받고 오는 경우가 많다. 환자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환자들도 치유가 된다."

-정신건강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정신건강의학과 환자의 치료 사례가 마음을 이끌었다. 처음부터 정신건강을 전공하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보통 의대라고 하면 드라마에서처럼 수술을 하는 것을 떠올렸다. 수업 중에 환자의 치료 과정을 설명해주는 내용이 있었다. 사례는 이렇다. 한 청소년이 식이장애로 입원했다. 흔히 말하는 거식증이었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식증이라고 하면 음식을 거부하는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거식증은 감정적 어려움, 즉 인지나 인식의 어려움도 관련된 병이다. 때문에 쉽게 치료가 되지 않는다. 치료자가 인내심을 갖고 해야 환자의 의식이 바뀌고 치료가 가능하다. 당시 사례도 그랬다. 의사와 환자간 특별한 과정이 있진 않았지만, 의사가 환자인 학생과 감정을 공유하고 관계를 돈독히 했다. 학생이 스스로 성장해 나갈 수 있게 도왔고, 결국 환자는 퇴원했다. 그 사례를 지켜보면서 많은 감정이 오고갔다. 아마 그때부터 정신건강의학을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정신건강’, 왜 관리가 필요한가.
"그저 스트레스 정도로 치부하다가 정신문제, 나중에는 신체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에 대한 편견이 많다. 아주 심각하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아닌 이상 정신건강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병원을 찾는 분들 중에도 ‘내 성격이 이상한 것 같다’거나 ‘이 정도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데 의지 부족이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은 말 그대로 ‘건강’의 한 부분이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을 찾는 것처럼, 정신건강이 힘들 때도 병원을 찾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정신건강 문제는 개인의 성향이 아닌 기질이나 생리적인 부분에서 시작되는 문제다. 정신건강 관리를 등한시했다가 더 큰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 감정적인 컨트롤이 되지 않으며 신체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나중에는 인지능력까지 떨어지는 등 결국 일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다행히 요즘에는 이러한 편견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가족문제를 상담하려고 병원에 오는 분도 있고, 연인문제나 진로를 놓고 들리는 분도 있다.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한 번쯤 겪는 문제다. 환자와는 대화를 통해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눈다. 많은 환자들이 마음의 짐을 덜어놓고 갈 때 보람을 느낀다."

-정신건강 진료에 대한 부담도 있다.
"정신건강의학과뿐만 아니라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의료기록은 남는다. 저도 가끔 그런 질문을 받는다. 너무 힘들어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는데 나중에 그 기록이 취직할 때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정보다. 의료기록은 매우 중요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어느 기관도 함부로 확인할 수 없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예를 들어 취업을 앞둔 회사에서 ‘당신의 이비인후과 진료 기록을 갖고 오시오’라고 하지 않는다. 잘못된 정보 때문에 자신의 정신건강 관리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스스로 정신건강을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병원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니다. 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곧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비법이다. 운동을 하거나 명상을 하고, 가까운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영화를 보는 것 모두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정신건강 관리에 도움이 된다."

-진료하며 본인이 받는 스트레스는 없나.
"당연히 저도 사람이기에 영향을 받는 게 사실이다. 환자의 감정이 어느 정도는 전달이 돼 힘들 때도 있다. 또 환자들이 지닌 문제가 하루 이틀만에 해결되는 게 아닌데 그 기간을 함께 보내면서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제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해야 환자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게 많다. 이런 부담을 그대로 담아둬선 안 된다. 제가 환자들에게 상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한다. TV나 영화를 보고 운동도 한다. 웹툰이나 웹소설도 챙겨본다. 간혹 너무 화가 날 땐 흔히 말하는 ‘이불킥’도 하고 혼자서 소리도 지른다. 또 가까운 지인들과 이야기도 한다. 물론 환자들의 문제를 얘기하진 않지만 안부를 주고 받으며 어려움을 하나씩 풀어간다. 대학시절 지도교수님과 상담하는 경우도 있다. 저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이기 때문에 상담도 받으며 정신건강을 관리한다."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결국 저를 찾는 환자들에게 힘을 얻는다. 저를 찾아오는 분들은 다들 어려움을 안고 있다. 환자와 상담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환자와 교감하고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조금씩 성장하고 나아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때 느끼는 성취감은 정말 크다. 결국 환자 덕분에 힘을 얻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오히려 저보고 건강을 잘 챙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에 좋은 일이 생겼다며 자랑을 하려고 오는 분도 있다. 공식적으론 의사와 환자 관계이지만 실제로는 즐거움까지도 나누는 관계다. 의사가 문제 원인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다만, 환자가 문제의 대안을 찾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 역할이다. 그리고 저는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산되며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는 실제로 병원을 찾는 분들이 코로나19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사태가 길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관계가 단절되며 우울증이나 답답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또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어려움을 많이 표현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분들에게 자연스러운 상황이니 조금만 버텨보자고 말씀을 드린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해선 잠시나마 관계가 끊길 수밖에 없다. 즉 내 자신이 취약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말씀드린다. 다만, 코로나19가 확산될 당시만 해도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마구잡이식으로 퍼져나가면서 큰 불안감을 야기하기도 했다. 환자들에게 그런 내용은 신경쓰지 말라고 말했다."

-꿈이 있다면.
"저를 찾아오는 분들과 함께 성장하고 또 늙어가고 싶다. 제가 적은 나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나이도 아니다. 저는 100%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계속 노력하고 성장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를 믿고 찾는 분들도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다. 은퇴 후에는 길게 여행도 가보고 싶다. 아직은 일에만 매진하고 있어서 따로 시간은 내지 못 한다. 하지만 평소에 여행을 좋아해서 늘 가고 싶다. 특히 제가 건강해야 다른 사람의 건강도 챙길 수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정신건강도 챙기고, 상대방도 건강해질 수 있게 돕고 싶다."

정성욱기자

사진=김영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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