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한 아파트단지가 주민 공모사업으로 8년가량 토끼 사육장을 운영해왔지만, 관리 부실로 토끼가 죽거나 사육장이 흉물로 방치돼 있는 등 동물권 침해가 만연하다는 지적이다.

제보를 받은 시민활동가들은 아파트 측으로부터 토끼 관리 권한을 넘겨 받고 남아있는 토끼를 임시대피소로 옮겨놓은 상황이다. 

15일 수원시지속가능도시재단과 수원 영통구 A아파트 등에 따르면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2012년 수원시 주민 공모사업에 선정돼 아파트단지 내 토끼 사육장을 세웠다.

도심 속에 생태체험장을 만들고 생명존엄성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사업 취지와는 달리 동물 습성에 맞는 사육이 이뤄지지 않고, 사육장 관리 주체도 없어 흉물로 전락하는 등 사육장은 동물권 침해 현장으로 바뀐 상황이다.

지난 14일 A아파트 토끼 사육장 앞. 녹슨 철망이 약 40㎡ 크기 토끼 사육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이 곳에서 토끼 9마리가 살고 있었다.

사육장 안에는 주민들이 주고 간 듯한 음식물이 널브러져 있었다. 철망에는 ‘양파 등을 토끼에게 줘선 안 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사육장 내에 양파 여러 개도 나뒹굴고 있었다. 썩은 음식물 위로 파리 떼가 모였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토끼가 생활하는 우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외벽은 오래돼 벽지가 너덜너덜했으며, 내부에는 거미줄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특히 사육장에서 토끼 사체 2구도 발견됐다. 오래된 듯 부패했다.

사육장에서 발견된 토끼 사체. 사진=정성욱기자/
사육장에서 발견된 토끼 사체. 사진=정성욱기자

혜금(활동명) 토끼보호연대 활동가는 "제보를 받고 사육장을 문을 열려고 했는데 얼마나 오래 문을 열지 않았으면 자물쇠가 다 녹이 슬어 있었다"라며 "토끼 특성 중 하나가 번식력인데, 8년 동안 토끼가 단 9마리만 남아있다는 건 그만큼 동물에게 나쁜 환경이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태체험이라는 명분으로 동물권을 침해한 이기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더욱이 사육을 담당하는 관리주체도 명확하지 않다. 시는 사업비를 지원하고, 사후 관리는 주민이 하는 등 두 조직이 교집합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당시 주민들이 생태체험장을 만들겠다고 해서 사업비를 지원했다"며 "늘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사업이 오래돼다 보니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A아파트 측은 사업을 신청했던 주민들이 모두 아파트단지를 떠나서 관리소에서 토끼를 관리해왔다는 입장이다.

A아파트 관계자는 "사업을 신청한 주민들이 아파트 재건축 등을 앞두고 모두 다른 곳으로 이사가서 관리 주체가 없는 상황"이라며 "그렇다고 놔둘 수는 없어서 관리소 직원들이 돌아가며 먹이를 주고 했다"고 말했다.

정성욱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