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기반 정책(evidence based policy)이라는 것이 있다. 필자에게 익숙한 형사정책 분야에만 국한하여 이야기 해보자. 한 국가의 치안정책이 올바르게 운영되기 위하여서는 범죄 발생 통계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전제이다. 그러나 매년 산출되는 범죄통계는 정확하지 않다. 특히 소년사건에 대한 통계와 가정폭력사건 아동학대사건 통계는 부정확하다. 최근에는 사이버공간에서 발생하는 범죄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바, 이런 신종범죄는 특히 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범죄통계에 오류를 유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찰에서 입건하는 사건들이 제대로 집계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특히 가정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일 년에도 이삼십 만 건 정도의 신고가 들어오는데 반해 10퍼센트의 사건만 범죄발생 통계로 편입된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과잉신고나 허위신고의 문제도 있으나 반의사불벌죄라는 것이 있어서 신고한 피해자가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면 입건이 어려운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의 해이만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들이 가정폭력을 바라보는 관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부싸움은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여전히 사건화를 지양하는 이유가 된다.

경찰이 사건화를 하지 않게 되면 그 다음 문제는 피해자들이 신고 자체를 안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고를 해도 구체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사법기관을 신뢰하기보다 자구적인 해결안을 모색한다. 아동학대는 대부분 이런 결말을 초래하게 되는데, 피학대 아동들이 선택하는 가장 손쉬운 해결안이 바로 가출이다. 가출을 하게 되면 오히려 아이들이 경험하는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가 일상이나 막상 당사자는 부모의 냉대나 방임 또는 체벌을 피하여 일단 탈출한다. 이 역시도 범죄통계에는 아동학대로 편입되지 않는다.

형사사법절차의 미비로 인해 범죄통계가 잡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년범죄의 경우에는 경찰통계와 검찰통계가 현저히 다른데, 이는 부처 간 업무 협력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대검찰청에서 매년 보고하는 범죄통계에는 촉법소년들이 저지르는 사건 수가 빠져 있다. 이는 경찰에서 가정법원 소년부로 직접 넘기거나 훈방 처리하는 건수가 빠져서이기 때문인데, 그러다보니 매년 소년범죄의 사건 수가 늘어나는 것인지 줄어드는 것인지조차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모든 정책의 중심에 사실상 정확한 통계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일이 아니다. 부디 국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세움에 있어 객관성과 중립성을 지녀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당장은 번잡하고 쓸데없다고 느껴질지라도 실무자들이 한 건 한 건 정성스럽게 입력해주신 자료는 국민의 생명권까지 보호해주는 올바른 정책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