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지혜를 요구하는 판데믹 시대

1346년에 유럽 동부에서 시작되어 1353년까지 유럽 전역에 급격하게 확산했던 흑사병은 인류의 목숨을 대량으로 앗아간 무시무시한 병임과 동시에 무지와 두려움에 떤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반면교사로 삼는 자료를 보여준다. 당시 사람들은 수많은 미신과 점성술에 집착했다. 아로마테라피 요법으로 공기를 정화하면 흑사병이 없어진다고 믿거나 에메랄드 가루를 분말로 만들어 먹는 건 약과였다. 흑사병이 신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해 자신을 채찍으로 매질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목욕이 건강에 해롭다고 간주해 손발을 씻지 않고 다녔다. 바깥보다는 하수구 안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해 집단으로 밀폐된 하수구 속에서 함께 살기도 했다. 집단 감염은 부지기수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지금 상식으로 봤을 때 말도 되지 않는 선택을 한 끝은 당시 세계인구 4억 5천만 명 중 20%가 넘는 1억 명 이상의 사망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77억 정도의 인구 중 17억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였던 셈이다.

판데믹은 인류를 위협함과 동시에 한발 더 나아간 새로운 지혜의 시대를 요구한다. 지금은 그 누구도 자기를 자학하거나 지저분한 환경 속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특히 대한민국 국민들은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수많은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며 각자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거리와 방역을 지키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와 생활의 표본을 대한민국에서 찾는 이유다.


이제 우리는 바뀐 세상에서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까?

먼저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의 일원으로서 지구의 자원들을 ‘지속 가능’하게 사용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무조건 ‘빨리, 많게’의 성장기조가 무분별한 과소비와 경쟁, 자원의 낭비를 만들지 않았는지, 지구 전체의 몸살, 동물들의 변이, 신종 전염병의 발생을 가속화 한 것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코로나, 혹은 코로나 이후 각종 국제적 전염병과 사람의 행동패턴에 대한 인과관계를 규명하고 성찰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국가 봉쇄령이 내려진 인도에서 160km 이상 떨어진 히말라야 산맥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는 뉴스나 사람이 사라진 지중해에 긴수염고래가 돌아왔다는 뉴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꼭 필요한 인간관계의 재정의도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조직과 가족의 구성원 측면에서 우리가 해왔던 비즈니스나 관계 맺음의 방식도 부분적으로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매번 모여서 하는 회의,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이 온라인 미팅이나 전화, 오프모임의 횟수 감소 등으로도 부분적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선별된 시간에 소중한 사람들과 보내기, 자기만의 시간 갖기 등의 가치도 다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 19는 결국 ‘비대면 디지털 전환’으로의 속도를 가속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먼저 국가 차원에서는 기존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된 세계 경제 질서의 해체과정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제조업이 등한시되고 서비스업만 강조했던 나라들이 허술한 방역체계로 진단키트나 마스크 없이 속수무책 당하는 경험은 공급체인망의 부분적 해체와 자국의 제조업 보호주의를 불러올 가능성이 커졌다. 또 국가는 국민과 함께 하는 감염병 대처능력이 국가 경쟁력이 되는 만큼 의료기술의 지원을 아끼지 말고, 방역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정보공유에 대한 체계적인 행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미사일의 보유개수가 아닌 그 나라의 민주주의 척도, 의료기술로 평가받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조직은 인간의 감염 불안을 덜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각자 산업에 최대한 적용해야 한다. 산업용 자율 로봇이나 인공지능(AI), 스마트 팩토리, 드론 등으로 원격지원, 원격의료, 원격배달, 원격업무 등을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최근 글로벌 언택트 공연 플랫폼으로 부상한 네이버 ‘V라이브’ 서비스도 좋은 예다. 국내 가수들이 콘서트를 열고, 이용자들은 원격으로 현장 콘서트보다 적은 비용을 지불하면 온라인으로 공연실황과 공연 후 VOD를 시청할 수 있다. 이런 서비스는 판데믹 시대에 팬들을 공연자와 멀어지는 걸 최대한 막으면서도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되었다.

각자 개인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 전염병은 국경도, 인종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전염형태를 보이기에 개인은 자유민주주의가 지나치게 치우쳐 나만 편하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를 함께 지키며 방역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도 개인정보의 과도한 노출 지점이 어디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또한, 집단 이기주의는 자칫 잘못하면 계층 간의 갈등이나 배타적 민족주의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나 이외의 타인을 배려하려는 글로벌 시민의식과 연대 의식이 절실한 시점이다.

다행인 건 중세시대 무분별한 맹신과 비과학적 상식이 이제는 과학적 지식과 합리적 정보공유로 대체되었듯이, 무기와 GDP로 대표되는 과거의 강대국이나 선진국 기준이 민주주의 체계와 시민의식, 방역기술, 언택트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IT강국, 성숙한 시민의식, 체계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도약한 한국에게 또 다른 기회임은 분명하다.

김형태 국회의장실 정무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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