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부상병과 허벅지에 화상을 입은 부상병이 있다고 가정하자. 만약에 앰뷸런스가 한 대 뿐이라고 하면 군의관은 어떤 부상병을 먼저 병원으로 옮기는 결정을 내려야할까? ‘당연히 목숨이 위태로운 부상병이지’라고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허벅지에 화상을 입은 부상병’이 정답이다. 최소한 경제학 에세이에 나오는 ‘앰뷸런스 이론’에 의하면 그렇다. 전쟁터에서 경중을 달리하는 많은 부상병에 비해 이들을 병원으로 후송할 앰뷸런스의 숫자는 제한적일 때, 군의관은 ‘가장 짧은 시간 치료로 전쟁터에 다시 투입할 수 있는 부상병’을 먼저 후송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도처가 전쟁터로 변하여,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죽겠다고 아우성인 지금이다.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있기는 한 것인지 조차 의문인 지경에 마주하여, 과연 누구부터 치료해야 할지 선택할 것을 생각하니, 지금보다 훨씬 풋풋한 대학생 때 읽었던 앰뷸런스 이론이 새삼스럽다. 당시 필자는 그 에세이의 결론을 보고 ‘그렇겠구나…’ 하면서 머리를 끄덕거리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젊은 가슴은 수긍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정의로운 것인지.

자동차산업은 비단 우리나라 자동차회사 뿐만 아니라 전세계 자동차산업이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가운데에 있다. 그중 쌍용자동차는 특히 더 어려운 여건 하에 있다.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상당기간 누적된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이루기 위해, 쌍용자동차는 전사적인 자구노력을 진행해왔다. 노조는 각종 복지 혜택은 물론 임금까지 삭감했다. 회사는 마른 수건을 짜고 또 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다. 대주주 마힌드라는 대규모 증자를 전제로 한국산업은행에 신제품개발 등을 위한 자금지원을 교섭하던 차였다. 이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고, 이를 빌미삼아 대주주 마힌드라가 증자를 포기했다. 목숨이 가장 위태로운 부상병을 버린 것이다.

쌍용자동차는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대주주 마힌드라처럼 비정한 앰뷸런스 이론을 적용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특히 현재는 쌍용자동차가 130여명의 정리해고자를 복직시킨 시점이다. 회사의 일감이나 일자리가 늘어서가 아니다. 적지 않은 분이 목숨을 버리는 참혹한 노동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결정이었고, 이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거들었다.

누군가 굳이 필자에게 답을 내라한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지난 4월 29일 ‘40조원+알파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설치를 골자로 하는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동 개정안에 따라 한국산업은행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해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한국산업은행을 포함한 모든 금융기관의 채권을 동결한다. 이를 통하여 쌍용자동차가 금융부도로 가는 일을 막아야 한다. 물론 1년 또는 2년의 기간을 정하고 쌍용자동차의 자산을 담보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현재 진행중인 전기차 등 친환경자동차 개발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은 브릿지론으로 지원한다. 이를 통하여 쌍용자동차가 장기적으로 회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한다.

여기에 더하여, 기왕 기간산업안정기금의 대상에 한국 자동차산업이 포함된 것을 계기로 대한민국 자동차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자. 독자적으로 생존이 가능한 회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자동차회사를 한목에 놓고 한국의 미래 자동차산업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가야한다. 특히 아직도 화석연료 시대에 머물러 있는 일부 자동차회사들을 친환경, 4차산업화 그리고 코로나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맞춰 그린 뉴딜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현대자동차 사장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에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쌍용자동차를 더 나아가 한국 자동차산업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냉정한 머리와 효율이라는 잣대만으로 해법이 찾아지지 않는다. 따뜻한 가슴과 정의라는 잣대만으로도 해결될 일이 아니다.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질 때에만 비로소 우리 자동차산업의 밝은 미래를 그려나갈 수가 있다.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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