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음모론’의 시대다. 총선 사전선거에도 부정 투표가 있었다는 음모,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한 ‘n번방 성착취 사건’도 정치적 배후가 있었다는 음모, 정의연(정의기억연대)의 모금액 사용에 대해 문제제기한 이용수 할머니 배후에도 누군가가 있다는 음모 등, 온갖 음모론이 넘쳐나고 있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세력은 극히 일부지만, 음모론이 우리 사회 여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음모론은 근거가 없다. 음모론이 객관적인 근거를 갖는다면 음모론이 아니다. 합리적인 문제제기가 된다. 합리적인 문제제기라면 각자의 근거를 토대로 치열하고 건전한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음모론은 애당초 토론이고 뭐고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음모론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고 설득할 수 없는 사회는 극단적 대립만이 있을 뿐이다.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고 모욕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남는 것은 인간적인 아픔과 상처 뿐, 결국 더 강하고 자극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악순환만 반복된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일부 세력들은 그저 내뱉으면 그만이지만, 그 폐해는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어쩌다 우리 사회는 음모론이 여론의 중심에 서는 사회가 되었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공적 논의의 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정치의 기능이 고장난 극단적 결과가 바로 음모론의 득세다.

개개인이 각자의 이익과 주장을 질서없이 쏟아내고 관철시키려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아마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되지 않을까? 홉스는 그래서 불가피하게 인간들 사이에 지켜야 할 약속을 맺어 질서를 강제하도록 했고, 이것이 바로 국가와 사회, 그리고 민주주의를 이루는 기초가 되었다. 요컨대,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갈등은 우리가 합의한 룰에 따라 다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사회에는 다양한 갈등과 대립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를 공적 논의의 장으로 가지고 와서 ‘평화롭게 다툴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이다. 더 정확하게는, 사회의 수많은 갈등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서 갈등의 수를 줄이고 동시에 시민들을 조직하고 통합하는 ‘정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E.E.Schattschneider)는 ‘정당이 갈등을 통해 조직하고 통합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인민들의 주권은 절반의 인민주권(The Semisovereign People)에 불과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당들은 과연 사회 갈등을 ‘평화롭게 다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사회적 기반이 없는 정당의 구조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도 하지 않는다. 여론조사 결과에만 매몰되서 이미지 정치, 보여주기식 정치, 막말정치 등 자극적인 여론만 조장하는데 골몰했던 것도 사실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 취준생들, 영세자영업자들, 노동자들, 농민 등 하루하루 힘겨운 사람들이 어딘가에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을 때 정당은 그들 곁에 없었다. 결국 극단적인 수준으로 싸우지만 정작 아무 것도 달라지는게 없는 현실은 우리 정당들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 없다. 사회 갈등을 공적으로 평화롭게 다루는 ‘정치’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공적 논의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있다면, 그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다듬어지지 않은 언어와 논리, 주장, 근거없는 음모론 따위일 수 밖에 없다. ‘절반의 인민주권’이 아니라 ‘빈약한 인민주권’이라 칭해야 할 판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21대 국회는 부디 공적 논의를 ‘평화롭게 다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단순히 음모론이 발붙이지 못하기 위함이 아니다. 사회 갈등을 공적 논의를 통해 평화롭게 다룰 수 있어야 비로소 시민들의 주권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음모론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유병욱 수원경실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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