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연동형 비례제 도입 21대 총선 전국 득표율 3% 당선만 노린 결과… '강제징용피해자 미불노임 받겠다' · '북진 통일' 등 공약 실효성 의문
"거대 양당 위성정당들 출현으로 연동비례대표제 도입 취지 무색"

#A당은 20세 이상 국민에게 매월 150만 원의 국민 배당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국민이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누리는 ‘중산주의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이유에서다. A당은 재원 조달 방안으로 예산 절감과 세수 증가를 통해 매년 800조 원의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했다. 초 슈퍼 예산으로 불리는 올해 정부 예산은 512조 원이다.

#B당은 한반도 통일과 동아시아 번영을 위한 국방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4차 산업에 걸맞은 방위 산업을 육성하고 예비 전력을 정예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원조달 방안은 ‘국비’다. 사업 추진 계획 및 예산 규모 등은 전무하다.
 

6일 오전 수원시 권선구 소재 인쇄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가 인쇄되는 4·15총선 투표용지를 검수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비례대표 선거에 나선 정당이 35곳으로 확정되면서 정당투표 용지 길이가 48.1cm에 달한다. 김영운기자
지난 4월6일 오전 수원시 권선구 소재 인쇄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가 인쇄되는 4·15총선 투표용지를 검수하고 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비례대표 선거에 나선 정당이 35곳으로 정당투표 용지 길이가 48.1cm에 달했다. 김영운기자

‘정당 정책의 실종’.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첫 도입된 21대 총선에 따라붙는 꼬리표다.

전국 득표율 3%라는 '로또'를 노리고 난립한 35개 정당 중 대다수가 정책 공약 완성도는커녕 재원조달방안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소수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했던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당초 취지와 달리 유권자들의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정당 정책’을 분석한 결과 대다수 정당에서는 정책 재원 조달안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낸 35개 정당 중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 정의당은 정책에 소요되는 연도별 예산과 구체적인 규모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외 다수 정당은 실효성없는 공약을 남발했다.

C당은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미불노임 4조 원을 일본으로부터 받아와 유족들에게 배분하겠다고 공약했다.

D당에서는 낭비성 예산을 줄이고, 북진 통일을 이루겠다고 약속했으며, E당 역시 불필요한 예산을 절감해 각종 정책을 실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들 정당은 정책별 구체적인 소요 예산 및 사업 추진 계획을 마련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책 공약 자체를 내지 않은 곳도 있었다.

깨어있는시민연대당과 새누리당 2곳은 선관위 홈페이지에서도 정당 정책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같은 정책 실종 현상은 전국 득표율 3%만 얻으면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을 차지할 수 있게끔 한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해로 분석된다.

실제 역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을 살펴보면 17대는 14개, 18대 15개, 19대 20개, 20대 21개로 조금씩 늘어나기는 했지만 큰 폭의 증가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이번 21대 총선 비례대표 정당은 35개로 크게 늘어났다.

전문가들 또한 21대 총선에서 벌어진 정당 정책 실종에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본래 정당에 정치적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인데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이상한 형태가 됐다"라면서 "3% 득표율만 얻으면 의석 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다수 정당이 대거 출연한 최악의 정당 정치였다"라고 지적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거대 양당조차 중앙 공약만 제시하고, 지역 개발 공약은 예산을 추산하지 않고 있다"라며 "지역 공약에 소요될 재원까지 추계하면 당초 예산보다 2~3배 많은 돈이 들어가고, 공약 자체가 현실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군소정당이 정당으로서 제대로된 역할을 수행해야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명실상부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군소 정당들도 기본적인 틀을 갖추고 자신들의 색깔에 맞는 정책을 준비해아한다"라며 "이번에는 처음이었지만, 다음에도 군소정당이 난립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시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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