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10주년을 기념하여 그분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저 산 너머"라는 영화를 시청하였다. 소년 김수환에게 신부가 되려는 꿈이 어떻게 어머니를 통해 일깨워졌는지 그려주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추기경님이 우리를 떠난 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 그분의 삶의 메아리는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파리 유학 시절 추기경님을 직접 뵐 기회가 있었다. 바쁜 일정 마치시고 자정 넘어 숙소로 돌아오시는 추기경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나와 동료 신학생을 방으로 부르셔서 함께 사진도 찍어주시고 손에 용돈도 쥐여주셨다. 별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웃는 모습으로 자상하게 우리를 바라봐 주시던 눈빛이 눈에 선하다.

추기경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보며, 사제로서 나 자신의 삶을 잠시 돌아보게 되었고, 그 안에서 어머니가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절에 다녔던 기억이 있다. 매년 사월 초파일이면 근교 절을 방문하여 스님도 찾아뵙고 불공도 드리곤 하였다. 어릴 적 스님 앞에서 절하면 스님께서 기쁘게 웃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그러던 어머니께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를 동네 성당 유치원에 보내셨다. 아마도 한복집 운영으로 몹시 바쁘셨기에 자녀 교육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리셨던 것 같다. 내가 친구들 따라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고 몇 년 후 세례를 받은 다음, 부모님과 동생 모두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이후 어머니는 내가 신앙을 통해 잘 교육받고 성장하도록 뒷바라지해 주셨다. 성당 복사를 서던 친구들과 어울리며 조금씩 내 마음에는 사제가 되고픈 갈망이 싹트기 시작했고, 사제가 되려는 나의 꿈을 어머니는 매우 좋아하시며 칭찬해주셨다.

중3 어느 날, 갑자기 신부의 꿈을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이성에 눈을 뜨면서 결혼 생활을 더 선망했던 것 같다. 용기를 내어 어머니께 나의 속마음을 어렵사리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오늘 말로 아주 ‘쿨’하게 "그러려무나." 하셨다. 이후 수원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였고 일반대학 화학공학과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주말이면 시간을 내어 시골에 내려가 성당에서 교리교사로 봉사하면서 지내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중고등부 캠프를 준비하며 성당 신부님과 몇몇 신학생(사제 지망생)과 가까이 어울려 지내면서, 다시금 신부의 꿈을 떠올리게 되었고, 급기야 대학 공부와 신부의 길 사이를 저울질하다 마음을 굳히고 지금 살고있는 수원가톨릭대학교에 편입학하였다.

부모님은 겉으로는 반기시는 듯하였지만, 속으로는 갈등이 무척 심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장래가 촉망되는 큰아들이 갑자기 결혼을 안 하고 신부가 된다고 하니 말이다. 큰 손자에게 큰 기대를 하시던 할아버지는 "이놈아, 씨를 팔어?" 하시며 대로하셨고, 할머니도 한숨을 쉬시며 속상해하셨다. 숙부님도 나를 불러 심각하게 이야기를 꺼내시며, "왜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느냐, 빨리 나오너라." 하시며 못난 조카를 향해 큰 소리를 내셨다.

수많은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지금도 가끔 떠올려보지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지금 함께 살며 사제를 지망하는 젊은 학생들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진다. 저들은 도대체 왜 신부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신학교 입학 이후 지금까지의 삶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두 차례에 걸친 파리 유학이 나에겐 큰 기회인 동시에 시련이었다. 11년의 유학 기간 동안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 것은 가족들 특히 어머니였다. 전화 통화가 끝날 땐 늘 "신부님, 사랑해!"라고 하셨다. 한국에 돌아와서 외할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우리 손자 신부,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하신다. 속마음을 서슴없이 표현하는 두 모녀를 보며 자유로움을 배운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젠 나도 제법 자연스럽게 어머니께 말씀드린다. "엄니, 저도 사랑해유!"

혼자 걸어온 삶인 듯하지만, 그 안에는 소중한 가족들, 특히 어머니의 흔적이 가득하다. 지금은 3년 전에 수술한 췌장암이 재발해 어려운 치료를 받고 계시지만, 절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신다. "누가 엄니 보고 암 환자라고 하겠어요?"라고 할 만큼, 어머니는 씩씩하게 지내고 계신다. 비록 암이라는 병이 큰 도전으로 다가오지만, 당신의 길을 멋지게 걸어가고 계시다.

어머니는 내가 신부가 되든 그렇지 않든, 나 자신의 삶을 행복하고 기쁘게 살기를, 꿋꿋하게 나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지금 사시는 바로 그 삶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도 이곳 신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을 동반하며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 이 학생들 하나하나 모두 자신의 길을 멋지게 걸어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이다.

우리는 사제의 꿈을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디 사제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저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꿈이 있을 것이다. 관건은 각자가 바로 그 꿈을 찾아가는 것일 거다.

코로나로 몹시 힘들고 어수선한 이 시기, 부디 이 시련, 언젠가 우리가 이겨낼 시련에 지치지 말고 각자가 걸어가는 길을 용기 내어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기를, 그 안에서 하느님의 부르심(天命)을 발견할 수 있기를, 그래서 하늘을 보며 웃음 지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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