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쉼터 등 이동시설에 나눔… 팬들 "CD, 포토카드 수집용 취급"
인천 남동구는 최근 지역의 한 봉사단체로부터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아이돌 가수들의 최신 앨범 CD 3천500장을 기탁 받았다.
시중가로 4천만 원에 달하는 양인데, 해당 아이돌 팬클럽이 봉사단체에 기부했다.
구는 이 CD를 청소년쉼터 등 지역의 아동시설에 나눠줬고, 안혜진(12·가명)양이 다니는 지역아동센터에도 26장이 전달됐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CD를 보면 하나같이 포장지 한 쪽이 잘려 있다. 배송 과정의 실수로 뜯긴 게 아니라 칼을 이용한 듯 반듯하게 잘린 모습이다.
특히 CD마다 한 장씩 들어 있어야 할 아이돌 가수들의 포토카드는 하나도 없었다.
혜진 양은 유닛 활동을 하는 남성 아이돌과 여성그룹 미니앨범 두 장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다. 그는 여성그룹 CD를 선택했다.
혜진 양은 "포카(포토카드)가 있으면 남돌(남자 아이돌) CD를 골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갖고 싶었지만 형편이 안돼 못 샀던 CD가 선물로 들어올 때도 있지만 항상 포카는 없다"며 "고맙게 받긴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다"고 했다.
인천의 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도 "구청이나 다른 기관들을 통해 한 해에도 여러 번의 CD 기부가 들어온다"며 "대부분 아이돌 가수들의 신곡발표 시기와 겹친다"고 씁쓸해 했다.
이에 대해 한 아이돌 팬클럽의 전직 관계자는 "열혈 팬들은 포토카드 수집이나 팬사인회 당첨을 위해 CD를 수십 장 산다"며 "소장용 이외의 CD는 처치가 곤란해 기부한다. 사실상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CD는 팬사인회 응모권이나 포토카드 수집용 취급을 받는다는 게 이 관계자 설명이다. 노래는 음원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보고 듣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발표한 국내 CD 판매량에 따르면 2015년 838만 장에서 2018년 2천154만 장으로 크게 늘었다.
음반업계의 한 관계자는 "청소년들의 주머니를 터는 연예 기획사들의 상술이 이런 촌극을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태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