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자신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양자역학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말은 얼핏, "양자역학이 그렇게 어려운거야?"라는 말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렇게 이해하면, 리처드 파인만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 뒤에 이어질 글은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 리처드 파인만의 말은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도전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 경우 위의 말은 ‘어느 누구도 연필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없다’든가, ‘어느 누구도 우산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없다’고 해도 똑같다. 이 경우 글은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한다는 것이 우리 두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의 하나이며, 사람이 자신의 기존 경험에 비춰서 새로운 지식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의 문제라는 등의 글이 이어지게 된다.

지역의 공공갈등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그 결정은 과연 우리 지역을 위하는 것입니까?’라고 누가 물어볼 수 있다. 이 말은 ‘그 결정이 과연 우리 지역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처럼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물음에서 핵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 과연 ‘우리 지역’이란 어떤 의미인가가 때로 더 중요한 것이다.

비선호 시설을 건설하는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그 시설에 대해서 지역의 여론을 파악하고자 할 때, 인근 500m 안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지, 범위를 5천m 이내로 할지, 그 기초자치단체에 사는 사람 전체를 대상으로 할지, 아니면 그 광역자치단체에 사는 사람 전체를 대상으로 할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대상 선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갈등에서 이 문제가 더욱 어려운 것은 500m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하고, 500m에서 5천m 사이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같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반경이 넓어질수록 해당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반경이 5천m로 넓어진다는 것은 사실상 500m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중요도는 희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500m 안의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 두 집단의 의견이 같을 때도 있지만, 다를 때도 있다.

한 외국 연구에 따르면, 비선호 시설에서 거리가 멀리 떨어진 사람들보다 비선호 시설에서 가까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그 비선호 시설을 더 강하게 거부할 것이라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었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인식과 판단이었다.

비선호 시설의 건설과 관련해서 기초자치단체의 역할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는 반대하는 주민들 편에 서서 사업자와 갈등을 벌이기도 한다. 한편, 기초자치단체가 전체 주민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해 비선호 시설의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최인접 주민들, 또는 좀 더 떨어진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벌이기도 한다.

‘우리 지역’의 문제는 물리적 거리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람들의 인식이라는 심리적 거리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가 바뀔 필요가 있다. 시민들의 역할은 반대 또는 찬성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서, 시민들이 지역 문제 해결 방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초기부터 동참할 수도 있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전형준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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