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모로부터 잔인한 학대를 당해오다 목숨 건 탈출을 감행한 창녕 어린이 사건부터 전국 곳곳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일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까지, 안 그래도 우울한 우리의 마음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 뉴스들이 마음을 파고든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며 고통받는 이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 누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없고 도움을 줄 수도 없다. 그러다가 내 주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지난 봄부터 방역대책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속 거리두기를 오가고 있으며 언제쯤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사회분위기는 위에 언급했던 취약계층들을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노인정, 복지관, 학교, 지역아동센터 등 자연스럽게 안부를 나누고 안 보이면 걱정해주던 모든 지역사회의 사적·공적 체계들이 사실상 정지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역사회의 행정 최전선에서 위기대상발굴을 주목적으로 활동하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마저 활동이 대부분 중단된 상태다.

표면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상당부분 일상을 회복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각급 학교들은 개학을 하고, 직장에선 언택트를 키워드로 하는 업무시스템도 대체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필자도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가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며 온라인수업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안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쌍방향이 아닌 일방적인 온라인수업과 아무런 피드백이 없는 학습활동은 아이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기대하던 등교수업은 주 1회로 한정된 데다 등교하자마자 학교는 밀린 업무를 몰아치듯이 표준화검사, 진단평가 등을 진행했다. 아이는 마침내 분통을 터뜨리며 대성통곡을 했다. 분통을 터트린 이유는 "마스크 쓰고라도 친구들이랑 눈이라도 맞추고 싶었는데 등교해도 고개도 못 들고 하루종일 시험만 보는 학교가 싫다. 열나면 학교 못갈까 봐 아이스크림도 안 먹고, 가족여행도 안 갔는데 억울하다"는 것이다. 곧 좋아질거라며 아이를 달래기는 했지만 필자도 내심 ‘일주에 한 번 가는 학교인데 교육행정 일정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외로움에 지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가정 내에서 또 다른 위기상황 가능성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주는 게 지금 교육당국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소위 ‘언택트’를 키워드로 회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정상화’ 이면에는 또 다른 형태의 고립과 격리가 존재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 대해 출구를 찾지 못하는 사회구성원들의 우울과 분노가 응축돼 가는 느낌이다. 이렇게 응축된 분노는 아동, 노인, 장애인, 여성 등 가정과 사회에서 취약한 존재를 향해 분출되기 쉽다. 이미 해외에서도 봉쇄가 길어지면서 가정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보도되고 있다.

지난달 경기연구원이 발표한 ‘코로나19세대, 정신건강 안녕한가!’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절반가량인 48%가 우울감을 느끼고, 스트레스의 강도는 세월호 침몰 사고때 보다 높다는 것이다. 특히 전업주부(59.9%), 자영업자(54.3%), 계약직 근로자(53.4%)의 우울감은 눈에 띄게 높았다. 앞으로 이런 시간이 길어지고 실질적 경제적 피해가 커질수록 우울감과 분노는 증폭되고, 끝을 알 수 없다는 점이 우리 사회를 더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이 불안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안전대책은 결국 공적, 사적 채널을 통한 소통이다. 이웃 간의 자연스러운 소통은 그 어떤 공적 시스템보다 강력하게 서로를 지키는 힘이 될 수 있다. 소통은 단순한 정보습득과 전달을 넘어 그 자체로 위로와 공감, 힐링의 시간이 되며, 그 관계 속에서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소통이 파산이나 실직과 같은 경제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극단적 선택이나 잘못된 분노의 출구를 찾아 누군가 희생시키는 것을 막고 함께 견뎌낼 힘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은 예정된 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하는 것만이 ‘정상화’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직장과 학교, 이웃이 서로 지친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도록 정부와 언론, 민간이 함께 아이디어를 모아 실천해야 할 때이다.
 

김병순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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