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A시장’이라는 초선 당선자를 가상으로 설정해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민선 7기가 막 시작되던 때였다. 어설픈 의전에 물들지 말고 창의적이고 능동적으로 시정을 이끌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 A시장이 엊그제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그동안 A시장은 참 많은 일을 했다. 공공 일자리 확대와 생활 인프라 조성, 우회도로 착공 추진과 재난대책 마련까지 쉼 없이 만들고 추진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민들의 숙원인 전철역 유치에 힘을 쓴 일이다. 유치가 확정된 날은 시청 직원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홍보행사를 개최했다. 역사가 들어설 곳에 관계자와 시민들을 모아 놓고 거창하게 발표식도 열었다. 선거용 팸플릿에 확실한 성과 한 줄을 추가한 날이었다.

시정을 운영하는 안목도 꽤 늘었다. 웬만한 건 척 보면 안다. 되는 민원인지 아닌지, 표가 나는 일인지 아닌지 금방 알아차린다. 처음엔 그런 거 저런 거 안 가리고 열정을 쏟았지만 이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 복잡한 민원이나 어려운 문제는 앞에서 유심히 듣는척하다가 돌아와서 뒤로 미루거나 관행대로 처리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 괜히 소신행정 한답시고 나서다 보면 일만 많아진다. 인맥도 꽤 많이 늘었다. 받은 명함만 수백 장에 이른다. 대부분 중앙과 지역 정·재계 주요 인사다. 요즘 들어서는 ‘내 직업은 원래 시장, 시정은 나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대로만 가면 다음 선거도 무난하지 싶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다소 과장한 설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이런 단체장이 없다고 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한 전직 단체장은 2~3년쯤 시정을 운영해보면 웬만큼 길이 보이는데, 그때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위험할 때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업을 할 때도 처음 가졌던 열정을 잊고 사람을 봐가며 테크닉으로만 대하면 고객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시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좀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만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시민들은 그때를 놓치지 않는다. 누가 마음을 다하는지, 누가 생색만 내는지 곧바로 느낀다. 자만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자만 만큼 경계해야 할 게 관행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관행은 혁신과 반대 개념으로도 쓰인다. 처음엔 의욕을 보이던 것도 얼마 지나다 보면 하던 대로 하게 된다. 편하기 때문이다. 애써 붙잡고 씨름하지 않아도 비슷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적당히 관행과 타협하고 슬슬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 이른다. 자연히 전시적이고 과시적인 선심행정, 모방행정으로 이어진다. 3년 차에 빠지기 쉬운 관행의 함정이다. A시장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내려면 앞서 언급한 인프라, SOC 구축과 함께 관행과 관료마인드 개혁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눈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것이 지역 발전을 저해하는 큰 요인이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에게 너무 많을 걸 기대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지방자치 도입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중앙정부로부터 시시콜콜 간섭과 통제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관선 때에 비해 민선 단체장의 권한은 생각보다 커졌다. 예산권, 인사권, 각종 인허가권 등 막강한 권한들이 집중돼 있다. 각종 비리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잘 활용하면 권한 내에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충분히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어느새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1년여 남짓이다. 복잡하고 다원화된 지금의 지역사회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갈등이 난마처럼 얽혀있다. 그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더욱이 코로나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맞고 있는 상황이다. 시정 책임자로 뽑아 준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행정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 단초는 당선 때 품었던 초심(初心)을 되새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저 그렇게 하던 일만 반복하다 떠나는 ‘뜨내기 시장’으로 머물다 갈지, 내 지역의 발전을 제대로 이끌어낼지는 오직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 후반기 A시장의 건투를 빈다.

민병수 /디지털뉴스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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