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실학박물관
사진=실학박물관

"하늘과 땅은 검고 누르며, 우주는 넓고 거칠다."(天地玄黃 宇宙洪荒) ‘천자문(千字文)’은 이제 막 글자를 배우는 아이들을 위한 교재이다. 첫 대목이 어린 아이들에게는 대단히 거창하다. 이 대목에 불만인 아이도 있었다. "하늘은 푸른데 왜 검다고 하지요?" 이 말에 연암 박지원은 아이들 교육에 ‘천자문’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다산 정약용 또한 ‘천자문’이 아이들 교재로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너무 어렵고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접 엮은 대안 교재가 ‘아학편(兒學編)’이었다. 1804년 강진 유배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만든 것이다. 흑산도에 유배를 가있는 둘째형 정약전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제가 편집한 아학편 2권은 2천자를 한도로 하여, 상권에는 형태가 있는 것[有形之物]을, 하권에는 물정(物情)·사정(事情)을 담았으며, 천자문의 예와 같이 8자마다 하나의 운으로 했습니다."

상권은 첫 두 글자가 ‘천자문’과 같이 ‘천지’이지만, 천지부모(天地父母)·군신부부(君臣夫婦)·형제남녀(兄弟男女) 등 기본적 인간관계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목구비(耳目口鼻)·고굉수족(股肱手足)의 신체와 일월성신(日月日月)·풍운우로(風雲雨露)의 자연 등,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담았다. 하권은 인의예지(仁義禮智)·효제충신(孝悌忠信)과 같은 인륜 덕목으로 시작하여, 추상적인 개념을 담았다.

사진=실학박물관
사진=실학박물관

‘아학편’의 특징을 보면, 상?하로 나누어 학습수준을 감안했으며, 범주화하여 분류체계의 감각을 갖게 했다. 또한 시비선악(是非善惡)·춘하추동(春夏秋冬)·동서남북(東西南北)·등강앙부(登降仰俯) 등과 같이 상대적 개념의 글자를 조합했다. 한자의 조어 원리도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 무조건 암기를 지양하고, 학습자가 단어 내지 개념을 논리적으로 확장시켜 나갈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 태도는 지금도 의의가 있다.

실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아학편’ 표지엔, ‘다산선생(茶山先生) 친필본(親筆本) 아학편(兒學編) 임오(壬午) 중춘(仲春) 송천(松泉) 경제(敬題)’라고 씌어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친필본인 ‘아학편’에 송천(松泉) 정하건(鄭夏建)이 삼가 제목을 썼다는 것이다.

김태희 실학박물관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