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강 최한기(1803-1877)는 개성 사람이다. 그는 지식욕이 왕성했다. 서적상은 새로 얻은 책을 최한기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했다. 최한기는 그런 책에 비싼 값을 아끼지 않고 지불했기 때문이다. 그는 열정적 독서를 바탕으로 자연과학, 철학, 사회과학에 걸쳐 방대한 저서를 지었다.

최한기는 또한 동과 서를 아우르고, 우주와 인간을 통합하는 학문을 했는데, 바로 ‘기학(氣學)’이다. 그는 우주의 실체를 ‘기(氣)’로 보았다. 기의 운동이 ‘운화(運化)’이다. 운화에는 세 가지 수준이 있다. 우주와 자연 전체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기의 운행이 ‘천지(天地)운화’이고, 모든 인간 사이에 사회적으로 이뤄지는 기의 운행이 ‘통민(統民)운화’이고, 한 사람 단위에서 이뤄지는 기의 운행이 ‘일신(一身)운화’이다.

세 운화는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어서, 이를 ‘천인(天人)운화’라 말한다. 일신운화는 통민운화에, 통민운화는 천지운화에 따른다. 따르는 것을 ‘승순(承順)’이라 한다. 승순은 ‘승천’과 ‘순인’을 통합한 말이다.

최한기가 살았던 때는 ‘서세동점’의 시대로, 동서와 고금(전통과 현대)의 충돌 조짐이 점차 농후해가던 때였다. 최한기는 지식과 기술의 진보를 신뢰하고 시대에 따른 변통(變通)을 강조했다. 또한 동양과 서양은 서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도(人道)를 통한 인류의 화협(和協)을 희망했다.

그의 세계주의·평화주의가 대단하고, 낙관주의가 볼 만하다. 다만 서구의 침략 양상을 돌아보면 위기의식이 너무 없었다든가, 사회적으로도 조화를 강조하여 갈등과 분쟁의 현실에는 너무 안이했다든가 하는 비판이 있다.

최한기의 사상은 초기 저작인 34세 때의 ‘기측체의’에서 체계를 갖추고, 55세 때의 ‘기학’과 58세 때의 ‘인정’에서 절정을 이뤘다. 실학박물관은 최한기의 저작을 몇 가지 소장하고 있는데, 집안의 기증으로 소장하고 있는 ‘승순사무’는 66세 때(1868)의 저술로, 말년의 사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저작이다.

김태희 실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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