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ABC협회는 매년 신문·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발행부수와 유료부수를 조사 공시한다. 기업은 이 자료를 회사의 광고매체 선정과 홍보비 산정에 참고한다. 유료부수란 독자가 돈을 내는 부수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구독부수라는 말도 쓰는데, 이는 독자가 사서(購) 읽는(讀) 부수를 말한다. 신문을 사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읽고 싶을 때 길거리 판매대에 가서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일 정기적으로 집이나 직장에 배달시켜서 읽는 것이다.

‘구독하다’ 뜻하는 영어 서브스크라이브(subscribe)에는 이 밖에 익명으로 기부하다, 응모하다, 정액요금제 또는 적립식펀드에 가입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찬찬히 생각하면 이 영어 단어는 ‘사다·읽다’보다 ‘정기·정액·적립’ 같은 데 무게를 둔 말 같다. 구독의 번역어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은 돈이나 읽기 같은 목적보다 ‘대놓고·지속적으로’라는 데 악센트를 두지 않았나 싶다. 신문을 사서 보되, 가판대에 가지 않고 정기적으로 배달시키는 구매 형태나 전달 방식의 표현인 듯하다. 그러면 이 영어는 ‘구독’ 중에서도 특히 ‘정기구독’이다.

지난 주말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대응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어 큰 걱정이다. 장장 54일의 최장기 장마는 이제 겨우 끝났다. 이런 연유까지 더해져 근래 사람들의 사회생활과 소비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간편화의 추구에 더해 외출과 접촉 자제가 겹치면서, 물품과 용역의 구매 패턴이 빠르게 변한 것이다. 잘 갖춰진 한국의 배송시스템은 인터넷주문의 폭발적 증가와 맞물려 그야말로 총알배송이 되었다. 거의 전 부문에서 온라인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

어느 백화점은 매장에서 판매하는 반찬을 매주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가정에 배달해 주는 ‘반찬 정기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가격은 외려 매장보다 저렴하다고 한다. 고객은 매주 다른 반찬을 맛보는 데다, 가격은 싸고 구매도 편리하다. 또 어느 제과점 체인은 정상가격의 60~80% 수준 월정액으로 커피, 식빵 등을 공급한다. 고객이 출퇴근할 때에 매장에 들러 물건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근래 새롭게 뜨는 이러한 구매·판매 방식 ‘서브스크립션 이코노미’(Subscription Economy)를 국내에서는 ‘구독경제’라고 번역 사용한다. 신문처럼 매달 정액의 요금을 내고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경제활동 방식이라서 그렇게 이름 붙였나 보다. 기존의 전통적 구독경제라 할 우유나 요구르트, 신문뿐 아니라 영화, 게임, 커피, 베이커리, 생수 등 거의 모든 재화와 용역을 매달 일정액에 정기 배송하거나 고객이 가서 인수한다. 명품의류나 자동차 같은 고가 상품으로까지 구독경제는 계속 진화 중이다. 이 구독경제 방식으로 기업은 일정한 수요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소비자도 싼 가격으로 간편히 구매할 수 있어 양쪽 모두 만족스러워한다.

그런데 이 ‘구독경제’라는 표현이 필자는 불편하다. 구독(購讀)은 명백히 사서 읽는다는 뜻이다. 커피를 구독한다? 세탁을 구독한다? 책이나 신문 그리고 그것들의 전자화된 콘텐츠 이외에 눈으로 읽을 것이 또 있던가. 생각이 얕고 전문가도 아니어서 ‘구독경제’라는 표현 대체할 우리말이 쉽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충 생각해도 정액과 정기 구매의 뜻을 담아 정구경제나 정기구매경제, 일정한 요금 지불 방식을 반영하여 요금경제나 정기요금경제 같은 표현을 쓸 수도 있겠다.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유호명 경동대학교 홍보센터장 겸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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