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하여 아우성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인간 존재의 근원을 뿌리째 말살시키는 것이 바로 병마이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라도 질병 앞에서는 큰 소리 치지 못한다. 이러한 판국에 사회적 막가파가 준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막가파는 조폭들의 행패로만 여겨왔다. 그런데 지금은 사회 곳곳에서 때와 장소, 공간을 무시하고 무슨 영웅이라도 된 듯 난리를 치고 있다. 며칠전에는 모 기독교 회장이 광화문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데 집회를 열어 집단 감염을 일으켰다. 국민이야 아랑곳 하지 않고 본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소영웅 같은 행동을 했다. 어디 그뿐이랴, 의회에서는 다수당의 힘으로 소수당의 의견은 듣지 않고 법안을 통과 시켰다. 혹여 반대 의견을 제시하려 들면 개혁의 걸림돌이라 하면서 이지매를 시키거나 법을 뜯어 고친다고 으름장을 내민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면서 숫자의 우위를 앞세워 기세 등등하게 만용을 부렸다. 그런 만용에 편승해서 선거전까지만 해도 잠시 숨죽여 있던 조국을 비롯한 범죄 혐의자들이 무죄추정 원칙이라는 얄팍한 법률 용어를 들먹이며 온갖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공직에 있거나 공직을 떠난자라도 법리적으론 비록 무혐의 선고가 나더라도 법리적 다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떳떳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요즈음 세상에 아무런 혐의가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누명을 씌워 옭아메겠는가. 아니 땐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그 중에서 특히 선거사범은 더하다. 선출직으로 당선된 자가 일백만원 이하로 벌금형을 선고 받으면 면죄부가 된 것처럼 의기양양해한다. 80만원을 선고 받아도 죄는 죄다. 그럴 경우에도 사과문을 내고 반성해야 함에도 죄의식이 없는 것 같다.
그러한 경향들이 사회전반에 전파되었는지 끔찍한 사건들이 나타나고 있다. 성범죄에 대한 단죄가 내려져도 숨어서 성범죄를 저지르며 대중 앞에서는 질책을 하는 이중적 작태를 보이는가 하면, 운행 중 시비가 생기면 흉기로 위협하가나 폭력을 가하고, 또 젊은이 들이 잘못된 행동을 꾸짖으면 봉변을 당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길을 가다가 만난 사람을 이유 없이 폭행하고 도망을 가는 등 전례 없던 기 현상이 우후죽순처럼 발생한다.
법과 도덕이 무너졌다. 그것은 지나친 비약일지 몰라도 작금에 일어나는 진영의 논리와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인기를 위해서 혹은 감정적 차원으로 대응을 하다 보니 이것이 자연스런 현상으로 여겨져 누구나 그래도 괜찮다는 안일한 인식을 심어 주지 않았나 염려스럽다. 사려 깊은 판단 없이 느닷없이 행정수도를 옮긴다는 발상을 하고, 부자는 마치 죄인인냥 인식을 가지게 하고, 신천지는 나쁜 종교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때마다 교모히 이용하고 있다.
하나하나 모두 열거 할 수 없는 최근의 현상들이 정부와 일부 지도자들이 만들어 놓은 신풍조의 여파라고 한다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피 흘린 독립 운동가들이 보면 얼마나 한탄할 일인가, 합리적 판단의 미약인지 중국에 머리를 조아리고, 북한의 김정은 앞에 제대로 할 말도 못하는 신파조 사대주의 같은 처신에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분연히 일어나 비판하면 수구꼴통 우파로 몰아 부치고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매도하는 자기중심적 사고의 집단들을 어떻게 다시 가르치고 교육해야 하는가, 연일 바른 소리를 하는 진중권이나 정의의 사도들의 목소리가 여름날 울어대는 매미 소리처럼 얼마간 살다가 사라지는 것이라면 누가 현자이고 누가 도덕군자인가, 가치관의 혼란, 세계관의 혼란, 철학의 부재가 한국 사회를 요동치고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인간이 추구해야할 행복의 권리는 어디가고 술이 취해 비틀거리며 내 집을 찾지 못해 헤매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길거리 아무 곳에 누워 잠자야 할까.
김현탁 한국현대문학연구소장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