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UN에서는 국가마다의 여성에 대한 폭력피해 통계를 수집하여 발표한다. 나아가 이 같은 여성의 폭력피해가 누구에 의해 일어나는지를 분석하여 친밀한 파트너(intimate partner)에 의한 인명피해 통계를 보고한다. 소위 파트너 살인이라는 지표인데, 이는 특히 부부간의 살인통계가 대표적이다. 서구 사회에서 파트너라고 할 때에는 꼭 혼인신고가 된 사람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전 혼인관계, 연인관계, 나아가 사실혼관계 모두를 포섭하는 개념이다.

경찰청은 7월과 8월에 ‘데이트 폭력 집중 신고기간’을 운영하여 1713명의 데이트 폭력 가해자를 입건하고 이 가운데 47명을 구속했다고 최근 발표하였다. 경찰의 이 같은 노력으로 많은 여성들의 안전이 도모된 일을 높이 평가할만한 성과이다. 그러나 이렇게 단속되는 테이트 폭력 피해로 목숨을 잃는 피해자들의 숫자에 대하여 우리나라 사법당국은 파트너 살인통계로 간주하여 UN ODC(Office on Drugs and Crime)에 보고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런 피해는 국내의 경우 일반적인 상해치사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살인죄가 적용되는 사건 수 중 피해자가 여성이며 가해자가 친족인 경우만을 공식적으로 UN에 여성살인 통계로서 보고를 하게 되는데, 이러다보니 치사죄가 적용되는 가정폭력사건이나 데이트살인 통계들은 모두 파트너살인의 공식적인 통계치에서는 빠져나가게 된다. 지나치게 축소된 통계치 때문에 대한민국은 여성의 안전이 충분히 확보된 국가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가정폭력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 1년에 적어도 3천 건 이상이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나 그중 30% 정도만이 기소가 된다. 그러나 경찰에서 사건화도 되지 못하는 가정폭력 상담건수가 매년 십만 건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고 보면 여성이 겪는 폭력피해의 실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일 것으로 짐작된다.

공식적인 통계치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보니 파트너살인의 정확한 통계치를 내기 위해 2017년도부터 2019년도 살인으로 선고된 1심 판결문을 모두 뒤져 보았다. 살인미수를 포함하여 살인이라는 죄명이 적용된 사건은 총 1333건이었는데, 그중 336건인 , 약 25%의 사건이 UN ODC의 기준에 맞춘 친밀한 파트너 간 살인사건이었다. 이중에는 물론 극소수 남자 피해자(26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21대 국회 들어 많은 의원들이 스토킹 방지법을 발의하고 있다. 결국 괴롭혀 죽이는 것이 목표인 비정상적인 사람들로부터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법률이다. 이런 입법의 취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가 정리한 살인사건들 중 파트너를 죽이기 전 스토킹이 있는 사건 수를 확인해보았다. 놀랍게도 친밀한 파트너 살인의 37.5%의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피해자에 대한 스토킹의 과정이 기입되어 있었다. 물론 애초 수사과정에서 미행 등 스토킹 행위가 조사되지 않거나 혹은 재판단계에서 심각하게 부각되지 않았던 경우에는 판결문에 스토킹으로 인한 죽음의 예비적 과정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 심각성이 분명하게 언급된 판결문만 자그마치 336건 중 126건이라고 확인괸 것으로 보았을 때 만일 스토킹만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면 우연히도 전부 여성이었던 126명의 여성은 지금 살아서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여성의 일원으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입법에 참여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쩌면 당연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부디 이번만큼은 여와 야가 갈라치기 하지 말고 스토킹방지법을 입법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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