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사철이다. 서울 전세난 여파가 경기 지역에 미친다. 강남, 여의도, 마포 등 서울 주요 직장과 가까운 하남 교산, 남양주 왕숙, 고양 창릉 등 3기 신도시는 어쩌면 상황이 서울보다 더 심각한지도 모른다. 비싼 서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경기도로 몰린 전세 수요에다 3기 신도시 청약을 노리고 전세살이를 시작하려는 수요가 겹친 탓이다. 최근 들어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일정이 나오면서 이 지역 매물은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 됐다. 3기 신도시 중에서도 특히 인기가 높은 곳은 하남 교산 일대다. 전세 품귀에 원룸은 물론 오피스텔, 월세 매물에까지 전세 수요가 몰린다. 3기 신도시 청약에 당첨률을 높이려면 올 연말까지는 계약을 완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세가 없으니 월세라도 2년을 살아 실거주 요건을 채우려는 사람들로 오늘도 이 일대 공인중개업소는 문턱이 닳는다고 한다. 미어터지는 전세 수요에 하남 전셋값은 이미 1년 전부터 급격히 오르고 있다. 치솟는 서울 전셋값을 피해 경기 지역으로 눈을 돌려도 또 다른 전세난과 마주하는 꼴이다.

하남에 전세 수요가 몰리는 까닭은 강남 접근성이 좋아서다. 국토교통부가 3기 신도시에 대해 조사한 결과, 선호지역 가운데 하남 교산은 20%로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뒤를 이어 과천(18%), 고양 창릉(17%), 남양주 왕숙(15%) 순이었다. 선호도를 따지는 이유로는 ‘편리한 교통’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러나 서울에서 하남 교산을, 또 하남 교산에서 서울로 접근하려면 현재는 쉽지 않다. 버스를 이용해야 하고, 산에 막혀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편리한 교통 때문에 하남 교산을 선호한다는 결과는 적어도 현재 기준은 아니다. 수요자들은 일대 교통망 확충에 따른 변화에 기대감을 걸고, 하남으로 교산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나마 기존 세입자들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2년 동안 주거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새로 전세를 구하는 신혼부부 등의 경우 "전셋값이 뛰어 예산에 맞는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잠시, 교육·교통이 불리한 외곽으로 밀려난다.

전세난은 전셋값 상승을 동반하며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대도시로 확산하고 있다. 최근 전세난을 바라보는 시각은 ‘새 임대차법 시행’에 원인을 두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 이용과 함께 전세 물량이 줄고,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미리 올려 받으려 하면서 신규 계약 시 가격이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 이를 뒷받침하듯 한국감정원 조사에서 수도권 전셋값 상승률은 지난달 3주 연속 0.16%를 기록하다 0.15%로 오름폭을 낮추는가 싶더니 이달 들어 0.14%→0.16%→0.21%로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 전국 전셋값은 12개월 연속 상승세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달 셋째 주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보다 0.21% 올라 2015년 4월 셋째 주(0.23%) 이후 5년 6개월 만에 최대폭 상승을 기록했다. KB부동산 리브온 자료에서도 서울의 아파트 전세값 변동률은 0.51%로 9년 만에 최대폭으로 뛰었다.

지금까지 전셋값이 안정적이던 지역까지 전세난이 번져 전셋값이 들썩이면서 새 임대차법이 서민들의 주거 안정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여파에 인하된 저금리’를 전세난의 원인으로 보는 정부의 시각과는 온도차가 있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했던 정부가 전세시장 안정을 위한 전세대책 발표를 예고하고 나섰다. 전세를 대체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늘리고, 월세 세입자를 위해서는 세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임대차법을 직접적으로 손보는 대신 기존의 공급확대 정책방향은 유지하되 보완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듯하다. 이 같은 대책만으로 전국으로 확산한 전세난, 전세 수요자들의 계약 전쟁, 전세의 월세화 가속을 막을 수 있을까. 물론, 가을 이사철이 지나면 전월세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을 찾아갈 것이라는 의견도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정감사에서 "과거 10년 동안의 전세대책을 다 검토해봤다"면서 "(지금은) 뾰족한 대책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세시장에 가장 좋은 대책은 공공임대주택을 아주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라고 방점을 찍었다.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서민들의 깊은 한숨과 함께 원성이 날로 커지는 가을 이사철이다.

이금미 경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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