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릴 적엔 12월이 되기도 전에 거리 마다 전파상을 통하여 루돌프란 빨간코 사슴이 징글벨을 부르며 썰매 차에 선물을 한 가득 싣고 흰 눈 뿌리며 한 달 내내 달리곤 하였네라.

우리는 거룩한 밤, 고요한 밤을 부르며 어른들과 조를 맞춰 새벽송을 돌고 새벽송 맞은 성도들이 사탕을 선물로 내주면 성탄절 낮엔 중고등부 아이들이 불우 이웃들 찾아가서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정도 주었지요.

낭만이 어우러지던 그리운 성탄절 풍경이 세상이 편해지면서 언제부턴가 교회 종탑에는 종소리가 사라지고 세속적이라며 기피하던 캐롤송뿐 아니라 탄신 축하 찬양송 마저도 자취를 감추고 이제는 성탄 예배 때 한 두곡 부르는 걸로 만족하고 있네요.

특히 금년엔 그 마저도 마스크를 낀 채로 불러야 하구요.

주님! 이 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실 때도 조용히 오셨지요?

동방의 눈 밝은 박사 세 사람이 별빛을 알아보고 주님을 찾아왔고, 천사가 알려주어 목동들만 찾아왔지요. 그 때는 캐롤송도 없었지만 주님은 구유에서도 만족하셨지요. 오늘 성탄절에 무서리내리는 가슴 가슴 마다 거리두기로 한 걸음씩 더 멀어지는 우리들 사이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눈물겨운 처방이라는 것을 주님은 아시지요.

오늘 목 놓아 부르지 못하는 찬송을 주님 알아 들어주소서. 이 역병의 환란이 우리의 죄 때문이라면 굴욕적일지라도 죄를 뉘우칠 때까지 목 놓아 부르겠나이다.

주님! 이 한 해가 가기 전에 이 슬픈 현실이 오늘 주님의 탄신을 기뻐하며 영광 돌리는 성도들에게서 영원히 깨끗이 물러가게 하소서.

 

정태호 수필가 약력

1987년 ‘시와 의식’ 등단,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서울시인협회 부회장,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계간 ‘한국시원’ 운영이사, 한국문인협회원, 셋 동인회장, 수지문학회장, 시집 ‘풀은 누워야 산다’(2017) ‘창세기’(2019) 외 3권, 수필집 ‘무지의 소치로소이다’,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작가상·주간 한국문학신문 대상 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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