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하러 온 환자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정신과 전문의가 있다. 환자의 아픈 마음을 볼모 삼아 성폭력을 자행한 이른바 그루밍 범죄를 저지른 의사이다. 더구나 자신이 고용한 간호조무사를 성추행한 혐의도 있었다. 그로 인해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기에 아동과 청소년, 장애인 보호기관의 취업이 제한되었다. 그렇다면 의사의 면허는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놀랍지 않게도 면허는 살아있다. 지금도 그는 병원을 운영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한 의사의 일탈일까? 최근 5년간 전문직 성범죄 통계를 살펴보면, 단연 1위가 의료인였다. 총 613명의 의료인이 성범죄를 저질렀다. 이 가운데는 진료 중 유사 강간행위를 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 모두 지금도 버젓이 의료 행위를 지속하여 많은 국민들의 상처에 손을 대고 있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이다.

사단의 배경을 살펴보려면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정부는 국민을 내팽개치고 파업에 몰두하는 의사들을 복귀시키기 위해 달콤한 사탕을 제안했다. 이름하여 의사의 자격기준 완화였다. 면허 자격을 완화시켜줄테니 의료현장으로 복귀해달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하였다. 성범죄를 저질러도 살인을 해도 의사면허는 살아남게 된 것이다.

달콤한 사탕이 쓴 독약이 되자, 정치권이 움직였다. 10여년 전 처음 의사면허 자격기준 정상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 해마다 논의를 계속해왔다. 의협과 보수세력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지만, 점차 협상의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지난 2월 국회 복지위에서 타결된 안이다. 분명한 것은 여·야의 합의에 의해 통과되었다는 것이다.

의료 직무와 연관성이 없더라도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의료진에 대해서 면허를 취소하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형 집행 종료 뒤 5년, 집행유예 기간 만료 후 2년까지 면허 재교부가 금지되게 하는 것이다. 정확히, 의료면허를 영구적으로 박탈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최대 5년 동안 제한하자는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감정평가사 등 의사와 유사한 사회적 대우를 받는 전문 직종과의 형평성을 맞춘 것이다. 아니 그동안 어긋나있던 형평성을 다시 되돌려 놓은 것이다.

오히려 다른 전문 직군과 비교할 때 여전히 특혜로 받아들일 만한 것들이 존재한다. 첫째 이번 개정안에서는 ‘의사’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의료행위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사의 죄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의료행위 중 언제든 의료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의료인의 특성상 이를 배려한 것이다. 둘째, 파산한 사람 역시 제외되었다. 파산과 의료행위 사이의 인과성이 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셋째, 면허가 취소되는 징계사실의 공표 역시 빠졌다. 앞서 살펴본 대부분의 전문직역에서는 면허가 취소될 경우 그 사실을 인터넷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린다. 전문직역의 도덕성은 국민들이 당연히 알아야할 권리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최전선에 있는 의사들의 사기를 고려하여 제외되었다.

이런 안이 국회 법사위의 문턱에서 멈춰버린 상태이다. 표면상으로는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야당 의원들 때문이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의협 지도부의 비상식적인 행태가 있었다. 의료법 개정안이 복지위에서 통과된 후 언론 등을 통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볼모로 삼아 의료진 파업 등 노골적인 정치행동을 일삼았고 그에 굴복한 국민의힘에서는 자신의 동지인 보건복지 위원들의 뜻을 하루 아침에 뒤집어 버린 것이다. 분명 서로 간의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의사자격기준 정상화의 길은 멀고 험난했다. 그간 많은 토론과 협의 위에 세워진 국민의 명령이다. 도대체 법사위가 무슨 권한으로 그 토론과 협의를 막고 있는지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곧, 3월 임시회가 열린다. 더 이상 그 길을 막을 명분은 없다. 국민과 함께 갈지 혹은 등을 돌릴지 둘 중 하나를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68.5%가 범죄 의사 면허 취소에 찬성하는 만큼 반드시 통과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고영인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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